지난 27일 전남 고흥군 거금도에서 열린 김일 동상 제막식./고흥군

‘역사(力士)의 고장’ 전남 고흥군이 1960~70년대 박치기 한 방으로 국내외 프로레슬링 대회를 휩쓴 ‘박치기왕’ 고(故) 김일(1929~2006)을 기리는 동상을 세웠다.

고흥군은 최근 고흥 금산면 김일 기념체육관에서 김일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고 30일 밝혔다. 사업비 4억 4000만원을 투입한 김일 동상은 높이 5m 크기 청동 재질로 건립됐다. 송귀근 고흥군수는 “김일을 추모하고, 잊혀져 가는 프로레슬링의 부활과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1929년 고흥 거금도(금산)에서 태어난 김일은 우리나라 프로레슬러 1세대로 꼽힌다. 김일은 국내 씨름판에서 활약하다가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듬해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면서 프로레슬러로 변신했다. 1958년 프로레슬링에 데뷔해 3000여 차례 경기를 펼쳤고 1963년 세계프로레슬링협회(WWA) 태그 챔피언 등 많은 타이틀을 차지했다. 호쾌한 박치기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라 20차례나 방어전을 치렀다.

김일의 호쾌한 경기는 당시 많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그의 벼락같은 박치기에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 거구의 상대가 고꾸라지면 전국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박치기왕 고(故) 김일(金一·1929~ 2006) 선수./조선DB

김일은 고향 거금도에 대한 애향심이 유별났다. 1960년대 말, 열렬한 프로레슬링 팬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인을 청와대로 자주 초청했다. 어느 날, 박 전 대통령은 “임자, 소원이 뭔가”라고 물었다. 당시 고흥 주민들은 주로 김을 채취해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야간에는 등잔불에 의존해 김을 따야할 정도로 열악한 작업 환경이었다. 고인은 “고향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김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제 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없다”고 대답했다. 6개월 뒤 거금도에는 전국 섬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1980년 은퇴 후 사업과 후진 양성을 했던 김일은 레슬링 후유증으로 인한 뇌혈관 질환 등 병마와 싸우다 2006년 10월 26일 타계했다.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2011년 12월 거금도에 있는 김일의 생가 부근엔 김일기념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거금대교도 이 무렵 개통돼 고흥에서 소록도를 거쳐 거금도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2016년에는 김일 추모 10주기 국제 레슬링대회가 열려 이왕표·노지심 등 레슬링 스타가 링에 올랐다. 지난 4월 치러진 고흥군 제2선거구 전남도의원 보궐선거에서는 김일의 외손자 박선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생전의 김일 선수./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