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의 ‘초소 책방’. 옥인동 수성동 계곡에서 출발해 20분 정도 길을 오르자 2층 통유리 건물이 보였다. 건물 곳곳에 놓인 테이블은 커피를 마시며 주변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로 빈 곳이 거의 없었다. 인근 주민 주영현(54)씨는 “서울 도심이 가장 잘 보이는 2층 테라스 좌석이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초소 책방’2층 테라스에선 푸른 인왕산 자락 너머로 도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기 좋은 명당으로 꼽혀 빈 테이블이 없었다. 깊어가는 가을,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을 돌아보는 도심 나들이는 어떨까. 독특한 외관으로 눈이 즐겁고, 다양한 공간 활용법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시간이다. /고운호 기자

인왕산 초소 책방은 지난 8월 서울특별시 건축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서울시 건축상은 건축의 공공·예술·기술적 가치를 구현하며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킨 건축물을 발굴해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 39회를 맞았다.

인왕산 초소 책방은 원래 청와대 방호를 위해 경찰 초소와 기지로 쓰던 ‘인왕CP’였다. 1968년 북한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이후 반세기 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던 곳이다. 지난 2018년 인왕산을 전면 개방하면서 철거를 앞두고 있었지만, 시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해보자는 청와대 의견에 따라 새 단장을 마치고 지난해 문을 열었다.

옛 초소 건물은 높은 담장을 두르고 시멘트 벽에 작은 창을 낸 폐쇄적인구조였지만, 1·2층 외벽을 모두 통유리로 바꿨다. 리모델링 설계를 총괄한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사방을 터서 건물 어디서든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며 “옛 흔적을 살리기 위해 기존 건물의 철문과 일부 벽체, 기름 탱크 등을 남겼다”고 말했다.

◇건축상 수상작 둘러보며 서울 여행

인왕산 초소 책방 외에도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은 13곳이 더 있다. 중구 주자동 ‘남산예장공원’도 오랜 기간 일반인 접근을 제한하다 최근 시민 공간으로 변신한 곳이다. 조선시대 군인들의 무예 훈련장(예장)으로 사용했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통감부 관사가 자리 잡았고, 1961년부터는 중앙정보부 6국이 있었다. 이후 서울시청 남산 별관과 TBS 교통방송 등이 들어섰지만 시민에게는 잊혔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남산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고, 지난 6월 정식 개장하면서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남산예장공원은 옛 중앙정보부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현대사의 아픈 흔적은 남겨줬다. 고문 수사로 치를 떨게 했던 ‘중정’ 지하 고문실을 재현했고, 과거 역사와 소통한다는 의미로 빨간 우체통 모양의 구조물을 세워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남산의 고유 수종인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나무 50여 종 6만여 그루를 심었다. 이번 수상작 중 건물 하나가 아닌 공원 구역 전체가 수상 대상이 된 곳은 남산예장공원이 유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역사 현장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복합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라고 했다.

‘서울여담재’(왼쪽)는 한옥 지붕의 곡선과 유리 공간의 직선이 만들어내는 이질적 조화가 인상적이다. ‘양천공원 책쉼터’(오른쪽)는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거실 같은 공간이다. /서울시

◇독특한 외관, 공간 활용법에 눈길

양천구청 인근에 있는 ‘양천공원 책 쉼터’는 대단지 아파트로 둘러싸인 공원 안에서 책을 읽으며 휴식하는 공간이다. 건물을 짓기 전부터 자리를 지켰던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 인상적이다. 설계를 총괄한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는 “먼저 있었던 존재들 사이에 건물이 조심스레 들어가 앉은 모양새”라고 했다. 높낮이가 1.2m 정도 차이 나는 부지 특성을 살려 건물 내부를 경사로로 연결했다. 딱딱한 서재 같은 분위기 대신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거실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라는 평가다.

종로구 창신동 ‘서울여담재’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로 둘러싸인 도심 속 휴식 공간이다. 사찰이 있었지만 관리가 안 돼 방치된 공간을 서울시가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여성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지난 5월 변신했다. 건물을 마주하면 ‘과거와 현재의 결합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한옥 지붕과 반듯한 유리로 꾸민 현대적 공간이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의 ‘피겨앤그라운드’는 주홍빛 판을 여러 겹 쌓아놓은 것 같은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평범한 다세대주택과 벽돌 빛깔이 비슷해 잘 어우러진다. 날렵하고 깔끔한 외관 함께 효율적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녹색건축상을 받은 ‘포스트 타워 여의도’, 자투리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중랑구 면목동 ‘집집마당’ 등도 둘러볼 만하다. 수상 건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서울건축문화제 홈페이지(www.saf.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이번 수상작들이 시민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대표 건축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