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는 새벽,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곰소 염전’에서 60대 일꾼이 하얀 소금을 밀대로 모으고 있다. 햇빛과 바람이 만든 짭조름 달착지근한 소금 알갱이가 밀대에 부딪혀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냈다. 70여 년 전통 방식을 지켜온 ‘곰소 천일염업’은 지난달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영근 기자

지난 3일 오전 7시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 염전. 메밀꽃처럼 하얗게 피어난 천일염이 소금밭에 가득했다. 60대 일꾼이 밀고나가는 밀대에 소금 알갱이가 부딪히며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냈다. 동트기 전부터 3시간가량 쌓아올린 소금은 500㎏. 아침 햇살을 받아 소금 더미가 반짝거렸다, 이곳에선 전통 방식으로 천일염을 만든다. 밀물 때 수문을 열어 인근 저수지에 바닷물을 저장하고, 염전으로 끌어온 물을 20일 정도 햇빛과 바람에 말린다. 염도 2도 바닷물이 증발지와 결정지 등 15곳을 거친다. 염도가 29~30도까지 올라가면 소금 결정이 맺힌다. 염전에서 갓 나온 굵은 소금 알갱이에선 짠맛과 함께 단맛도 났다. 신종만(75) 남선염업 대표는 “소금 창고에서 1년 정도 간수를 빼면 단맛이 더욱 강해진다”며 “김장철을 앞두고 곰소 천일염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국가 중요 어업 유산 등재

부안 ‘곰소 천일염업’은 지난달 제10호 국가 중요 어업 유산이 됐다. 국가 중요 어업 유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유형·무형 어업 자산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2015년 도입한 제도다. 제주 해녀 어업을 1호로, 보성 뻘배 어업과 남해 죽방렴 어업 등 11개가 지정됐다.

곰소 천일염업은 신 대표의 조부가 1946년 시작해 4대째 가업으로 계승하고 있다. 남선염업은 곰소 일대에 축구장 70여 개 면적인 57만여㎡ 염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천일염을 만든다. 값싼 중국산 소금이 대량으로 유입돼 가격이 폭락하자 국내 염전 3분의 1이 폐업하거나 태양광 발전 등으로 전환하는 상황이지만, 전통 방식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5월 중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송홧가루가 결정지에 내려올 때 만들어진 소금은 곰소의 특산물”이라고 말했다.

곰소 염전의 소금창고 ./김영근 기자

곰소 염전은 가장 위쪽 증발지를 가장 아래쪽 결정지보다 1m 정도 높은 곳에 만들어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구조다. 소금을 수레에 퍼 나르는 기계를 제외하곤 70여 년 전부터 사용하던 도구를 쓴다. 비가 올 때 잠시 염수를 받아두는 창고인 ‘해주’도 옛 모습 그대로다.

곰소 염전은 연평균 1630t의 천일염을 생산하며 지역 경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 20가구가 소금 생산에 참여해 가구당 연평균 1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곰소 천일염으로 젓갈을 담가 판매하는 주민 600여 명이 올리는 매출은 연간 500억원에 달한다. 해수부 지정 전통식품 명인이 제조하는 ‘부안 개암 죽염’도 곰소 염전 천일염을 사용한다. 신 대표의 아들인 신정우(35) 남선염업 과장은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린 데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 발표가 나와 사재기 현상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엔 람사르습지, 관광 접목해 6차 산업으로

곰소 지역은 천일염 생산에 최적 조건을 갖췄다. 일조 시간은 연간 2100~2350시간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염전 주변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습지 보호 지역이고, 인근 갯벌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주변에 오염원이 없고,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깨끗한 바닷물이 유입된다. 염전 위생 상태도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선염업 측은 “특수 여과지를 사용해 바닷물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10월 3일 오전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염전에서 한 염부가 이른 새벽부터 소금을 걷어들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김영근 기자

부안군은 천일염업과 관광을 연계하는 ‘6차 산업’ 본고장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1차 산업인 천일염업을 2차 가공산업, 3차 서비스업과 융합해 부가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곰소 염전엔 연간 4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바둑판 모양의 염전이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독특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염전 위로 떨어지는 낙조도 장관을 이룬다. 전통 건축 기법으로 지은 소금창고는 전국 사진작가와 동호인들의 단골 출사지다. 염전 인근 곰소항에는 1960~1970년대 건물이 원형을 유지하며 보존돼 있어 옛 항구 거리의 추억과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부안군은 104억원을 들여 ‘곰소 소금 테마 거리’를 조성할 예정이다. 바닷물을 퍼올리는 ‘무자위’, 소금을 옮기는 ‘소금 바구니’, 염전틀을 다지는 ‘다대기’, 염도를 측정하는 ‘뽀매’ 등을 전시하는 소금 박물관도 만든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관광 시설을 보강해 곰소 염전 일대를 체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