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문을 연 경기도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 시설이지만 현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경기도 지자체 6곳이 공동 출자해 조성한 광역 화장장이 본격적으로 운영에 돌입하자, 그동안 화장 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던 화성·부천·안산·시흥·광명·안양 등 경기 서남권 주민들은 “숨통이 트였다”고 반겼다. /조철오 기자

지난달 1일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1리 산골 마을에 ‘함백산 추모공원’이 문을 열었다. 대표적인 혐오 시설로 꼽히는 화장장(火葬場)인 만큼, 추모공원 조성까지 10년간 줄다리기와 위기가 있었다.

개원 한 달째인 2일, 이 추모공원을 찾았을 때 ‘혐오·기피 시설’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장의차에서 내린 유족들은 현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ㄷ’자 모양의 건물로 들어갔다. ‘해가빛쉼터’라는 이름의 화장시설에서 고인과 이별한 뒤 유골함을 들고 건물을 나설 때까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봉안당 ‘별빛쉼터’는 천장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햇빛이 건물 안을 환하게 비췄다. 한 방문객은 “푸른 소나무와 잔디밭, 하얀 조각상과 분수대를 보니 유명 미술관에 온 것 같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추모공원이 문을 열면서 110가구가 사는 숙곡1리는 다른 마을이 됐다. 주민 50여명이 주주로 참여해 식당과 매점, 장례식장 운영 등을 담당하는 ‘주식회사 함백산’이란 사업체를 꾸렸다. 주민들에겐 일자리가 생겼다. 나이 든 주민들은 추모공원에서 경비와 청소 직원으로 채용됐다. 10월부터 운영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기 위해 주민 6명은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마을 옆으로 4차로 도로가 놓였고, 마을버스 노선도 생겼다. 이필범 주민협의체 위원장은 “주변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는데, 추모공원이 없었다면 우리 마을은 지금도 정체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백산 추모공원은 화성·부천·안산·시흥·광명·안양 등 경기도 6개 지자체가 함께 조성한 수도권 첫 광역 화장장이다. ‘혐오시설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유치한 상생 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여곡절도 있었다.

화성 함백산 추모공원

6개 지자체는 30만1146m² 부지에 1714억원을 투입했다. 주민에게는 추모공원 수익 사업권을 맡긴다고 약속했다. 마을 발전기금 395억원도 조성했다. 2013년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숙곡1리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하고 2015년 공동투자 협약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산을 사이에 둔 인근 지역 주민들이 다이옥신 등 환경 피해와 혐오 시설에 따른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당시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의 등교까지 거부하며 반발했다. 행정소송 등으로 사업이 좌초할 위기를 맞았지만, 주민 청구가 기각되면서 2019년 초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전북에서 ‘서남권 추모공원’(정읍·고창·부안)이 생기긴 했지만, 전국적으로 광역 화장장 추진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하남시는 시장 소환운동 등을 겪으며 사업을 접었고, 안산시 등은 독자적으로 화장장 사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현재 가평에서 경기 동북부 광역 화장장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주민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함백산 추모공원이 문을 열자 그동안 화장장 이용에 불편을 겪었던 경기 서남권 주민들은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최근 갑작스럽게 모친상을 당한 김모(59·화성시)씨는 5년 전 삼촌 장례식을 치르며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수원·용인·성남 등 도내 화장장 예약이 꽉 차 4일장을 치러야 할 상황까지 몰렸고, 결국 충북 청주까지 가서 ‘원정 화장(火葬)’을 해야 했다. 그는 “가까운 화장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고인의 복(福)”이라고 했다.

추모공원 한쪽에 전국 최초로 추진한다는 문화·예술·체육인 특화 묘역이 보였다. 1984년 LA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김원기 선수가 다음 달 1호로 안장되는 것을 시작으로 총 66기를 조성한다고 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애물단지 공동묘지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