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덕분에 빚도 다 갚고 이제는 가족들에게 큰소리 칠 수 있게 됐습니다.”
경북 상주시 모서면에 사는 김진형(56)씨는 논농사와 함께 캠벨 포도를 적지 않은 규모로 재배하고 있었지만 두 딸과 아들 대학 보낸다고 빚이 수천만원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속해 있는 고산영농조합법인 김형수(63) 대표의 권유가 인생을 바꿨다.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14년 김 대표가 그에게 “샤인머스캣 품종을 재배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사건’ 때문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죠.”
그래도 ‘인생 뭐 있나’ 하는 생각에 캠벨 포도 일부를 뽑아내고 샤인머스캣을 심었다. 잘 키운다는 확신도 없었던 데다 재배하기는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몰랐다고 했다. 그걸 보고 아내가 “이거 뽑아내자”고 다그쳤고 주변에서도 “미쳤구나” 하면서 동정의 시선까지 보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샤인머스캣 재배에 ‘올인’했다. 당시 그는 상주에서 초창기 샤인머스캣 재배자였다.
지금은 일년에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고, 수천만원에 이르는 빚도 다 갚았다. 이제는 흑자 인생에 접어들었다.
2019년부터는 아예 샤인머스캣만 재배한다. 재배 면적은 2만6400㎡에 이른다.
그가 속해 있는 고산영농조합법인은 국내 여러 영농조합법인 중 샤인머스캣의 수출량과 수출액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샤인머스캣 한 품종만으로 2016년 35t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70t, 2018년 115t, 2019년 226t, 지난해 300t 등 해마다 큰 폭으로 수출량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는 중국 수출량이 8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베트남⋅홍콩⋅태국 등 동남아 시장이 차지한다. 캠벨과 거봉을 수출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지난해에는 샤인머스캣 수출로만 100억원을 벌었다. 국내에서 샤인머스캣 품종으로만 대 중국 수출 물량의 60%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다.
고산영농조합법인은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포도 산업계를 샤인머스캣으로 전환해 다시 부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샤인머스캣은 1988년 일본에서 개발한 고급 청포도 품종의 하나다. 당도가 높고 씨가 거의 없어 껍질째 그냥 먹기에도 편하고 가격은 일반 포도보다 3~4배 비싸 고급 포도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 농가에는 2006년에 종자가 들어왔으며, 2010년대 들어 포도 농가에서 서서히 재배하기 시작해 재배 농가가 급격히 늘었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고품질에다 재배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비를 맞으면 잎이 황록색으로 변하면서 말라죽는 노균병에 취약하다. 그래서 하우스 재배가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기본 투자비가 많이 들고, 이 품종에 사용되는 농약도 일반 농약보다 몇 배나 비싸다. 그러나 투자비를 상쇄하고도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고된 작업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고산영농조합법인의 대표이자 국내에서 일찍 샤인머스캣을 재배하기 시작한 김형수 대표는 국내 1세대 재배자 중 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한국포도수출연합 황의창 회장에게서 재배 권유를 받고 시작했는데 농업기술센터 등 여러 기관과 단체로부터 재배 기술을 익히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작목반까지 구성했다. 지금은 100여 농가가 샤인머스캣을 재배한다. 전체 포도 재배 면적만 55만5235㎡에 이른다. 물론 아직도 상당수 농가는 캠벨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이 영농조합법인이 수출에 나선 것은 2015년. 태국에 처음 진출했고 이어 베트남⋅홍콩⋅말레이시아 등으로 시장을 넓혔다. 2017년에는 동남아 시장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중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서둘렀다. 2015년 한⋅중 검역 타결 이후 신선 과일로는 최초로 중국 수출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최고급만을 판매한다는 베이징의 SKP백화점에 처음 출시했을 당시 1송이(500g)에 10만6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중국 시장 진출은 가속화됐다.
국내 샤인머스캣 수출 성장의 이면에는 관련 기관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고산영농조합법인 김상현 총무과장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저온 저장고 시설을 지원받아 샤인머스캣 유통기한을 늘렸고, 접이식 상자도 지원받아 날개를 달았다”고 말했다. 또 농림축산식품부의 권유로 생산자단체와 한국포도수출연합 등 관련 기관들이 최저 가격을 유지토록 해 덤핑수출을 막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러한 촘촘한 지원과 정책은 국내 포도 전체 수출액이 2018년 1430만달러에서 2019년 2350만달러, 지난해 3120만달러 등 높은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계기가 됐다. 이 중 샤인머스캣은 전체 포도 수출액의 88% 정도(2020년 기준)를 차지한다.
이런 성장세를 유지하려먼 철저한 품질관리가 뒤따라야만 했다.
가령 송이를 너무 크게 해서 당도가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송이의 무게는 700g에 맞추고 포도알도 50개 정도가 되도록 나머지 100여 송이는 솎아내는 것이다.
김형수 대표는 “이러한 품질관리 덕분에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고산영농조합법인의 샤인머스캣은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 조선일보·농림축산식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