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원정대장이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高峰) 14개를 모두 등정하는 데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추락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이하 연맹)은 김 대장이 현지 시각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 시각 오후 8시 58분)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 지대에 있는 브로드피크(Broad Peak·8047m) 등정에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유재강(등반대장), 정우연(장비·식량), 정득채(수송·포장) 등 6명의 대원이 그의 등정을 도왔다.
브로드피크는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이로써 김 대장은 2006년 가셔브룸Ⅱ(8035m)를 시작으로 15년 만에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밟는 기록을 세웠다. 장애인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完登)은 그가 처음이다. 비장애인을 포함하면 44째, 한국인으로는 일곱째다. 김 대장은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코로나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들 힘내십시오”란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고 연맹 측은 밝혔다.
하지만 김 대장은 정상 등정 후 하산하다 중국 쪽 낭떠러지로 실족해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김 대장이 정상 등정 후 하산하는 도중 해발 7900m 지점에서 추락해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현지에 있던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산악연맹은 김홍빈 대장의 실종 소식을 듣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현재로선 김 대장이 크레바스(crevasse·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김 대장이 오늘 오전 9시 58분쯤(현지 시각) 직접 무전으로 대원들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며 “근처를 지나던 해외 등반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접근했다”고 전했다. 김 대장과 해외 등반대원들 사이의 거리는 음성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광주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해외 등반대원들이 김 대장에게 로프와 등강기(고정된 줄을 타고 오르게 돕는 등반 장비)를 내려보내 끌어올렸지만, 줄이 끊겨 더 깊은 낭떠러지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한 산악 관계자는 “김 대장이 추락하지 않았다고 해도 저체온증이나 산소 부족으로 탈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앞서 김 대장은 2015년에도 브로드피크에 도전했으나 7600m 지점에서 악천후를 만나 하산했다. 지난해에도 등정 준비를 마쳤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도전을 미뤄야 했다. 그러다 이번에 정상 등정 후 사고를 당한 것이다.
1983년 대학 산악부에서 등반과 인연을 맺은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동상을 입었고, 열 손가락을 절단했다. 병원에서 7번이나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장애를 얻었다.
그는 장애를 입은 뒤 알파인 스키로 전향하기도 했다. 1999년 처음 국가대표가 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이후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 등정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올랐고, 이번 등정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기록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