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져 가고 명맥만 겨우 남은 전통공예 중의 하나로 지화(紙花)가 있다. ‘종이꽃’이라 불리우는 지화는 굿판이나 불교 의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물품이다. 이승을 떠날 때 타고 가는 상여를 장식하는 것도 바로 지화다.
지화를 만들 줄 아는 장인은 전국적으로 20여명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1명이 김태연 대구대 명예교수다. 김 명예교수는 강의와 연구에 바쁜 가운데서도 40여년을 지화의 매력에 빠져 연구하고 제작하는 일에 매달려온 지화 장인이다. 전통지화 1호 명인지자, 궁중상화(床花) 명인이다. 궁중상화는 궁중에서 큰 잔치가 있을 때 잔칫상을 장식하는 지화를 말한다.
김 명예교수가 손수 제작한 지화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21일부터 27일까지 대구 동구 석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방색과 현대미술 소고전(展)’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5명의 작가가 오방색 중 각각 한가지 색을 테마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오방색’이란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등 다섯 가지 색을 말한다. 음양오행 사상을 기초로 한다.
이번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모두 5명이다. 김태연 명예교수를 비롯해 전통섬유공예명장 고금화, 서양화가 김유경 방나교 이영미씨이다.
이들은 각각 한 가지 색을 테마로 해서 작품을 내놓았다.
김태연 명예교수는 흰색을 테마로 지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 교수가 만든 지화 중 하나가 ‘살제비’다. 살제비 지화는 재생과 환생의 의미를 띠고 있는 상상의 꽃으로 여러 무속에 등장한다. 살제비 장인은 전국적으로 3명에 불과하며, 실제로 현재 제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김태연 명예교수 뿐이다.
다알리아 꽃도 있다. 이도주 스님의 기법을 전수받은 김 명예교수는 꽃잎 하나하나를 가위로 오리고 붙이는 고난도의 기법으로 수십 송이의 다알리아 꽃을 선보이고 있다. 제작에만 석달 반이 걸린 노작이다.
지화 전시와 함께 ‘감은사에 꽃피다’라는 제목의 동영상도 상영돼 지화와 관련된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감은사, 문무대왕릉을 배경으로 김은진씨가 혼령을 위로하는 ‘넋전춤’을 춘다. 김은진씨는 민속학자이자 한국민속극연구소를 설립한 고(故) 심우성 선생의 제자다.
김태연 명예교수는 “사라져 가는 살제비 지화와 대왕암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황량한 감은사지에 흰꽃을 피워 호국영령들을 추모 천도하는 마음을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전통섬유공예명장인 고금화는 청바지를 소재로 해서 청색의 기운을 뿜어내는 작품을 내놓았다.
김유경은 적색, 방나교는 흑색, 이영미는 황색을 각각 테마로 해서 평면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를 기획하고 직접 작품도 내놓은 방나교씨는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의 가치를 인문학적 접근방식으로 해석해 현대미술과 연계한 전시로 기획했다”며 “우리 고유의 전통 자산에 대한 환기와 한국의 현대미술의 세계화 가능성을 실험하는 자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