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중부경찰서에서 서쪽 방향으로 서성로 바로 직전 기남상사 건너편에는 4층짜리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이 건물은 유서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동시에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철거 전날 극적으로 보존에 성공한 무영당 건물. 흰색타일 마감과 장식화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구시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자본으로 건축한 대구지역 민족자본 최초의 백화점 ‘무영당’ 건물이다. 무영당은 건물주인 민족자본가 이근무가 후원한 대구 출신의 민족시인 이상화, 천재화가 이인성 등 지역의 신지식인, 예술인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건축학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 대구지역 3개 백화점 중 원형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미나까이 백화점은 1984년 철거됐고, 이비시야 백화점은 여러 차례 수선을 크게 해 원형을 잃어버렸다. 이에 반해 무영당은 흰색타일 마감, 정면부 벽면 돌출기둥, 장식화판 등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건물로 건축 원형과 변형 과정을 확인가능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 필요성이 높다고 평가됐다.

이 같은 가치를 지닌 무영당 건물은 지난 3월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해졌다. 그러나 철거 하루 전날 극적으로 철거위기에서 벗어나 보존됐다. 까딱했으면 없어질 뻔한 것이다.

대구시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대구지역의 근대건축물 2개를 철거 직전 극적으로 매입하는데 성공해 보존하게 됐다.

대지바 건물. /대구시

무영당이 바로 그런 사례다. 대구시는 철거 바로 전날 이 사실을 알고 건물주에게 “일단 측량을 해보려고 하니 며칠만 말미를 달라”고 사정했고, 건물주는 이를 수락했다. 이렇게 해서 건물주를 상대로 끈질긴 설득을 벌인 끝에 건물 매입에 성공했다.

무영당과 함께 6·25전쟁 당시 구상 시인이 후배 문학가들과 자주 들렀던 활동공간인 ‘대지바’도 철거 직전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중구 대구근대역사관 뒷편에 자리한 2층 규모의 대지바는 향촌동의 귀공자로 불리우던 구상 시인이 피난문인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공간이었다.

대구시는 이번에 매입에 성공한 건물의 보존 방향을 두고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즐겨 찾고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는 생동감 있고 사랑받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또 이번 두 건물 매입을 계기로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믈을 계속 매입할 계획이다. 한편 그간 진행해온 역사문화자산 보존 관련 정책의 추진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먼저 자산 전반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를 위해 ‘문화재청 역사문화자산 조사사업’과 연계해 조사와 데이터베이스화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건축문화연합과 협조해 도지재생 아카이브도 구축할 예정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내년 상반기 중 대구시 조례 및 심의기준을 개정해 민간개발사업의 건축ㄹ 인·허가 시 사업구역 내 역사문화자산에 대한 보존 및 활용계획을 사전 협의토록 할 방침이다. 자칫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구에서는 최근 소남 이일우 선생 고택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보존한 사례가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자산의 보존과 같은 장기정책이 성공하려면 행정이 명백한 방향성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하지만 이것은 시민들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가정”이라며 “앞으로 문화자산 보존과 관련된 시민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