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없다 -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배종훈씨가 아들 배재국씨의 휠체어를 밀며 15마일(약 24㎞) 정도 지난 지점에서 한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풀쩍 뛰며 포즈를 취했다. /배종훈씨 제공

배재국씨는 아홉 살이던 2005년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온몸의 근육이 점차 굳어져 끝내는 심장과 호흡 근육까지 멈출 것”이라며 “병 치료 방법이 없어 기껏해야 10년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휠체어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며, 스무 살도 넘기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들을 업고 병원을 나선 아버지 배종훈씨는 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결심했다. “재국아, 내가 가장 넓은 세상을 보여줄게.” 아버지가 다짐을 지킬 방법은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걷고, 뛰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휠체어 탄 아들과 그 휠체어를 미는 아버지로 이뤄진 ‘팀 재국’이 미국 마라톤 횡단에 나섰다. 이 팀은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국했다. 두 사람은 1일부터 6월25일까지 86일간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약 4500㎞를 달려 대륙을 횡단할 계획이다. 휠체어가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고속도로나 비포장 구간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종훈씨가 휠체어를 밀며 두 발로 뛰어갈 예정이다. 캠핑카 운전과 지원 업무는 대륙 횡단 달리기 가이드 경험이 있는 재미 교포 스티브 양씨가 맡는다.

종훈씨는 2005년부터 20년 넘게 재국 씨의 휠체어를 밀며 국내외를 돌아다녔다. 세상 구경의 본격적인 시작은 2007년 6월 부산~서울 국토 종단이었다. 팀 재국은 지금까지 걸어서 국토종단 6차례를 완주한 것을 비롯, 마라톤 풀코스(42.195㎞) 50회 완주, 하프코스(21.0975㎞) 20회 이상 완주, 울트라 마라톤(100㎞) 1회 완주, 울트라 마라톤(50㎞) 2회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 2015년 미국 뉴욕마라톤 풀코스에서 팀 재국의 완주 기록은 4시간43분46초. 혼자 뛴 이들의 평균 기록은 4시간34분45초다.

지난달 30일 아버지 배종훈(왼쪽)씨와 아들 재국 씨가 미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종훈씨가 뛰면서 재국씨의 휠체어를 밀어 미국을 횡단할 계획이다. '팀 재국'은 지난 20년간 국토 종단과 국내외 마라톤을 여러 차례 완주했다. /팀 재국

재국씨는 의사의 진단을 뒤엎고 30세가 된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고 있고, 종훈씨는 올해 환갑을 맞는다. 2015년 종훈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아들이 좋아하니 계속 했다. 재국이가 자신감도 생기고 살도 붙었다”고 했다. 미국 횡단 마라톤도 재국씨가 국토를 종단한 뒤 “죽기 전에 세계에서 제일 강한 미국을 횡단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추진한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운영하던 신발공장 문을 닫은 종훈씨는 2007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팀 재국의 미국 횡단 마라톤은 주변의 도움으로 시작됐지만 여전히 경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미국 왕복 항공권을 제공했고, 아이닥 안경, 바이탈에어코리아, 한국근육장애인협회, 한국울트라마라톤연맹(KUMF)도 후원에 나섰다.

종훈씨는 출국에 앞서 “병마와 싸우고 있거나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많이 보고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재국씨도 “힘들고 아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