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위기가 닥치면 고민이 많아져 플레이가 답답했거든요. 이번엔 ‘생각 없이 직감적으로 치자’고 마음먹었죠.”
‘당구 천재’ 김영원(19)이 15일 제주에서 역대 최연소 PBA(프로당구협회) 왕중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6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흥분이 묻어 나왔다. 그는 전날 열린 2025-2026 PBA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승부처인 5세트 초반 1-10으로 뒤진 상황을 하이라이트 영상을 되돌려보듯 설명했다. “세트 초반에 쉬운 공을 하나 놓치고서 크게 흔들렸어요. 여러 대회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샷을 해보자’고 다짐하며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성공했죠.” 실제로 그는 8연속 득점을 올리며 반격에 나섰고, 결국 5세트를 따냈다. 최종 스코어 4대2 승리. 중학교 3학년 때 PBA에 데뷔한 ‘천재 소년’이 경험이란 무기를 장착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김영원은 이날 승리로 PBA 월드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 기록(만 18세 4개월 25일)을 새로 썼다. 이 대회는 시즌 상금 랭킹 32위 이내 선수만 참가할 수 있는 일종의 ‘왕중왕전’이다. 김영원은 “2024년 말 투어 첫 우승을 했을 때 ‘빨리 한 번 더 실력을 증명해야지’라는 압박감도 있었는데, 이젠 ‘최연소’ 신기록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게 경기한다”고 말했다.
김영원은 이번 대회 때 당구대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설치된 당구대가 다른 곳보다 잘 미끄러지는 편이어서 (공이) 예상했던 각보다 길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며 “처음 2~3세트까지는 적응하는 데 신경을 썼고 이후엔 괜찮았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손끝 감각이 예민한 선수로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유독 좋다고 느꼈는데, 중식 요리사였던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당구를 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랑 같이 놀면서 친구처럼 지냈어요. 아빠가 쉬는 날이면 함께 PC방에 가서 ‘배틀그라운드’라는 총싸움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어느날 아빠가 당구에 빠지더라고요. 가장 친한 친구인 아빠를 따라서 저도 당구를 치게 됐죠.”
김영원은 큐를 잡은 지 2주 만에 본격적으로 당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당구연맹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21년 전국종별학생선수권 3쿠션에서 중등부 1위를 차지했다. 이후 2022년 PBA 2부 투어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당구판의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아들이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아버지도 생업인 요리사를 그만두고 뒷바라지에 나섰다. 김영원은 “가족을 포함해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분들 덕분에 (당구를) 게을리할 수 없다”며 올해 1월 별세한 작은 할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재미있게 당구하고,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당부하셨어요.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 대회에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죠.”
실제로 그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개인 연습장에서 매일 12시간씩 훈련에 매진한다.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되고 싶다”며 다음 시즌 개막이 예정된 5월까지 휴가 계획도 잡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은 3쿠션 당구 세계 랭킹 1위인 조명우(28)의 플레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한다. 김영원은 “전 감각을 세밀하게 조절해 약하게 치는 공에 자신이 있지만, 적절한 파워를 쓰면서 강하게 스트로크하면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는 “조명우 선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스타일을 익혀서 대회에서 한 번 맞붙어보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된 그는 평소 당구와 무관한 취미는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주 3~4회씩 중랑천을 달리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당구를 칠 때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만 김영원은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건 몸매를 좀 멋지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라며 수줍게 웃었다.
김영원은 PBA 왕중왕전 우승 상금 2억원 중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시한부’라는 책을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작가님이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데 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마음이 움직였어요.” 김영원은 “당구 선수나 한 인간으로 꾸준히 발전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