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83세 석사생 모길연 25일 졸업식 사진/경희대

지난 2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체육대학원 학위 수여식. ‘특별 공로상’ 시상 시간이 되자 희끗한 머리에 석사모를 단정히 눌러쓴 모길연(83)씨가 단상에 올랐다. 상장엔 ‘귀하는 배움에 대한 지속적 열정과 학문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평생 학습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모범적인 자세를 높이 기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씨는 1968년 대학원에 입학한 지 58년 만에 학위를 받아 경희대 최고령 석사가 됐다. 그는 이날 “고령으로 배움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지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합시다”라고 했다.

1943년 강원 춘천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모씨는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술을 좋아한 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식구들은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그럼에도 모씨는 공부를 곧잘 해 1963년 건국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기차로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공부했다. 두 살 터울 형은 서독 광부로 떠나 외화를 보냈다. 학창 시절 태권도 단증을 따뒀던 모씨는 대학생 시절 주한 미군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보니 근육과 신체 기능에 관심이 높아져 1968년 경희대 체육대학원에 입학했다.

미군과의 교류를 통해 모씨는 미국에서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됐다. 아내는 물론 어머니, 친형 식구 모두 1968년부터 차례로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모씨도 1학년만 마치고 떠났다. 모씨 가족은 버지니아주에 정착해 샌드위치를 팔았다. 새벽 4시에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저녁 7시까지 장사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목돈이 쌓이자 1985년 해산물 레스토랑을 인수해 운영했다. 아들과 두 딸에겐 ‘열심히 공부하라’고 강조했다. 자녀들은 영국 옥스퍼드대와 아이비리그(미 동부 8개 명문대)인 다트머스대 등을 졸업하고 회사원, 영화 PD, 구글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모씨는 2021년 레스토랑을 아들에게 넘기며 은퇴했다. 근면성실을 무기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다.

그러자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석사 과정이 자꾸 생각나 경희대에 재입학 문을 두드렸다. 교수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면접을 본 체육대학장(오경록 교수)이 모씨가 건강할 뿐 아니라 학업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결국 재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68학번’ 모씨는 작년 봄 학교로 돌아왔다. 지도 교수를 맡은 정현철 교수는 모씨 아들과 동갑이다.

과거처럼 가난한 것도 아니지만 평생 절약이 몸에 밴 그는 학교 근처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4만원짜리 원룸에 들어갔다. 오전 9시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학교에서 공부했다. 오전 7시에 나와 밤 11시에 들어간 날도 많다. 수업마다 교수에게 질문을 5~10개씩 퍼붓는 ‘질문왕’ 석사생이었다. 그러면서 매일 1시간은 학교 체육관에서 운동했다. 2030 젊은 학생들이 “귀감이 되는 선생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1년 안에 논문까지 마칠 수 있었던 건 스스로 노력한 것뿐 아니라 정 교수 지도 덕도 컸다. 모씨는 논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보살펴 주신 정현철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 빚 많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