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부문에 출전한 김상겸·이상호·정해림(이상 알파인)·유승은·이채운·이지오(프리스타일) 선수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예전에 ‘달마배’ 스노보드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달마 키즈’다. 이 대회를 만든 봉선사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기 위해 12일 절을 찾았을 때 그는 막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스노보드 선수들의 선전과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마치고 나온 길이었다. 그는 “여섯 선수 중엔 초등학교 1학년 때 대회에서 처음 만난 선수도 있고, 어린 시절 집안 형편 때문에 절에서 잠시 지낸 선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어쩌다 봉선사뿐만 아니라 국내 스노보드계까지 뒷받침하는 주지(住持)가 됐을까.
그는 1997년 봉선사에 있었을 때 ‘인명 사고가 잦으니 기도를 해달라’는 요청에 인근 스키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답례로 스키장 티켓을 받고 눈 위에 서봤다. 14세 소년 시절 출가해 인생 대부분을 절에서 지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날듯 설원을 가르는 스노보드였다. 그는 “스키는 옷과 장비, 움직임이 로봇처럼 딱딱해 보였는데, 스노보드는 자유로워 보였다”며 “프리스타일 스노보드는 앞뒤의 구분이 없이 마음대로 탈 수 있고, 그걸 타는 젊은이들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그걸 보고 불교에서 얘기하는 생사해탈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스노보드의 매력에 빠진 스님은 열 살 이상 어린 동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배웠다. 승복 입고 보드를 타는 그에게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던 젊은 친구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면서 마음을 얻었다. 캐나다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그는 “그때 숙소에서 젊은 스노보더들과 함께 끼어서 자고 밥을 지어 먹으면서 그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고 했다.
국내 스노보더들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2002년 대회를 열었다. 상금으로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1000만원을 내놨고, 대회명은 달마배로 정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엔 잠재력 있는 어린 나이의 선수를 뽑아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쌈짓돈과 다른 사찰에서 십시일반으로 내주는 돈, 종단에서 매년 후원해 주는 1800만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달마배에 참가했다가 불자(佛子)가 된 선수들도 있다. 이 중 일부는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는 ‘묵언’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는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데, 특히 스노보드와 같은 동적인 운동일수록 정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예컨대, 가장 속도를 올려야 할 때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 않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참선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호산 스님은 10여 년 전 본지 인터뷰에서 “환갑까지 스노보드를 타겠다”고 했는데, 환갑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타고 있다. 그는 “보드를 탈 때 분별심을 끊으려고 많이 노력한다”며 “그래야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탈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고 했다. 분별심을 끊는 대신 ‘무유정법(無有定法)’과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떠올린다.
“정해진 법이란 건 없고, 따라서 장소와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설원에 있든, 법당에 있든 어떤 마음으로 있느냐가 중요하죠. 어디에 있든지 주체적이고 자유로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