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독자/ 2026년 1월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SK V1 센터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 전시를 여는 가수 김수철이 본인의 작품과 함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건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저에게 보내는 소리를 그린 겁니다. 이 소리엔 인간의 지식도 상식도 법칙도 없어요. 그동안 세상의 무궁한 소리를 귀로 들려줬다면, 이제는 눈으로 들려주고 싶어요.”

400호(약 2.59×1.94m)짜리 거대한 캔버스 위에 두툼하게 얹어진 물감은 언제라도 흘러내릴 것 같이 보였지만 단단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달 말 서울 신내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가수 김수철은 “자연(중력)의 법칙이 없는 행성을 표현한 것”이라며 작품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 1000여 점 중 160여 점을 추려서 14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인전 ‘김수철 소리그림’을 연다.

김 작가는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 수도 있었지만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서 예술의 전당에 전시 지원서를 냈다. 전문가 심사를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이용우 씨는 “관객들은 불규칙하고 혼성적인 회화형식이나 우주적 주제에서 동원되는 상상력 때문에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환상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2026년 1월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SK V1 센터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 전시를 여는 가수 김수철이 본인의 작품과 함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내년이면 가수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는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와 같은 대중음악으로 이름을 알렸다. 30여 년간 국악에 천착한 그가 참여한 영화 ‘서편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은 100만장이 넘게 팔렸다. 가수와 작곡가로 정점을 찍었던 그가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그동안 미술 전시를 연 여러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떠올랐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휴식 시간에 즐기며 그린 작품이 아니다. 업이라고 봐도 좋다”고 했다.

김 작가는 “중학교 때 전국 그림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지만 음악에 빠진 뒤 가수의 길을 걸었다. 대학 때부터 틈틈이 스케치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의 느낌을 그림 일기로 그려왔다”고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붓을 든 것은 팬데믹 기간이었다. 자택의 두 평짜리 부엌에서 자신의 몸을 요리조리 구겨가며 캔버스 위로 붓질을 하다가 1년 반 전 30여 평 크기의 현재 작업실을 구했다. 그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음악이 좋아 미친 듯이 기타를 치면서 잘 치게 된 것처럼, 그림도 미친 듯이 그리면서 내가 원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그는 여느 전업 작가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 매일 오전 5시쯤 일어나서 6~7시쯤 작업실에 도착해 약 12시간쯤 그림을 그린다. 같은 건물에 있는 샌드위치·쌀국수 가게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200호가 넘는, 밀도 높은 대작으로 가득 채워진 작업실을 보고 놀란 지인들에게 “당신들 술 마시고 놀러다닐 시간에 그린 것”이라고 일갈한다. 김 작가는 “40대 초부터 술을 끊어서 술자리에 갈 일도 없고, 해외 여행을 3년 전 처음 다녀올 정도로 노는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고시생 공부하듯, 수도승 도닦듯 그림을 그리면 지겹지 않을까.

“좋아하는 걸 하면 지겹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에 빠지면 앞뒤 재지 않고 파고듭니다. 지난 45년간 돈도 안되는 국악을 공부하고 작곡한 것도 마찬가지죠. 작곡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어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든 적이 있지만, 그건 더 잘하고 싶어서일 뿐이지 지겨워서는 아녔습니다. 지겨워진다면 그건 진짜 좋아한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