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생 정희문씨는 환갑을 넘긴 2001년 러닝에 입문, 지금까지 풀 코스와 하프 등 마라톤 대회에 약 500번 출전했다. 해마다 20회씩 나간 셈이다. 지난 3일 오전 인천 중구 도원동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만난 정씨는 “단순한 운동이나 취미가 아니다. 뛰는 건 이제 제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러닝을 처음 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2001년 인천의 한 구의회 의원이던 그는 잦은 술자리와 운동 부족으로 70㎏대였던 몸무게가 90㎏까지 늘어나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마침 인천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공고를 보고 덜컥 신청서를 냈다. 정씨는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만 살이 10㎏ 빠졌다. 그때부터 재미를 느껴서 마라톤 대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25년 동안 오전 6시쯤 일어나 30분을 뛰고 아침을 먹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마라톤에 빠진 정씨는 자신이 사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어 수년째 회장을 맡았다. 동호회원들과 함께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을 비롯해 전남 여수, 경북 성주 등 전국의 마라톤 대회를 섭렵했다. 90명 가까운 대부대를 이끌고 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정씨는 “이 나이에도 내가 회원들 마라톤 참가 신청을 도맡는다. 나 없으면 우리 회원들 대회 못 뛰어요”라며 껄껄 웃었다.
정씨는 마라톤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2018년 세계 3대 마라톤 중 하나인 뉴욕 마라톤에 나갔던 경험을 꼽았다. 큰맘 먹고 수백만 원을 들여 처음 나선 국제 대회였다. 정씨는 “군더더기 없이 쫙 펼쳐진 도로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뛰는데 마치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며 “그해가 팔순이었는데,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 1965년 뒤늦게 서울예술대 연극과에 입학해 배우를 꿈꿨다. 연극 여러 편에 출연하며 연기를 갈고닦던 그는 결혼하면서 꿈을 접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친에게 철공소를 물려받아 일했다. 정씨는 “미국 연수를 가서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씨는 2023년 춘천마라톤을 마지막으로 풀코스(42.195㎞)는 뛰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도 준비만 하면 풀코스 완주는 가능하다”면서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기록보다 그저 뛸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기 때문에 관리 차원에서 자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담배를 하루에 세 갑씩 피우는 애연가였지만, 환갑을 맞은 날 금연을 다짐한 뒤로는 여태껏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즐겨 먹던 소주도 요즘엔 많이 줄였다. 러닝 외에도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식사는 가리지 않고 많이 먹는 편이다. 그는 “6·25 전쟁 때 굶주렸던 기억 때문인지 뭐든 잘 먹는다”고 했다.
정씨는 “마라톤은 계속 혈액 순환을 시켜주는 운동이라 건강해지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며 “이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것도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그는 함께 노년을 통과하는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뛰면서 숨 쉴 수 있으면 그게 행복입니다. 뭐든 꾸준히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건강을 유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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