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와 목수의 일이 다르지 않아요. 음표 하나, 나사 하나도 다 쓸모가 있고 머릿속 상상을 작품으로 만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요.”

‘엄마야 누나야’ 등 한국의 정서가 녹아든 음악을 만드는 클래식 작곡가 이영조(83)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은 목수 혹은 철물점 주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지난 1일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따스한 피아노 방 대신 찬바람이 들어오는 뒤뜰 작업실에서 군데군데 구멍 뚫린 앞치마 차림으로 서 있었다.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에서 의뢰한 오페라 ‘춘향’을 준비 중인 이영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은 작곡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이 작업실을 찾아 육체노동을 한다. 손에 든 악보는 그가 작곡한 오페라 ‘황진이’의 아리아 ‘청산리 벽계수야’. /박성원 기자

작곡이 업이라면 나무와 쇠를 다루는 일은 그의 오랜 취미다. 20대에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을 따며 공구와 친해졌고, 독일과 미국을 거쳐 귀국한 뒤에도 쭉 전원 생활을 하며 전기톱과 용접기를 써서 웬만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왔다. 칠 벗겨진 프라이팬으로 만든 해시계, 뚝배기로 만든 풍경(風磬), 술병으로 만든 식물 조명 등 정원 곳곳을 장식한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올해 자신의 6번째 오페라 작품이 될 ‘춘향’의 곡 작업에 들어간다. 내년 상반기까지 약 1년 2개월간 작곡을 마친 뒤, 2029년 독일에서 초연하는 대장정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춘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 극장이 지난해 “중국 배경의 ‘투란도트’, 일본 배경의 ‘나비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의 사랑 이야기로 ‘춘향’을 유럽에 소개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뜻이 맞았다. 1950년 초연한 ‘춘향전’은 최초의 한국어 오페라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국제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약했다. 그는 “클래식의 임윤찬부터 팝의 BTS 등 우리 예술가들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K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이 나올 시점”이라고 했다.

자신감의 근거는 한국 설화를 서양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창작 오페라 ‘처용’(1987년 초연)을 해외 무대에 올려 본 경험이다. 이 전 원장은 “2024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처용’을 들려주면서 한국에 대한 달라진 관심을 느꼈다”며 “이제 춘향전의 ‘쑥대머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유럽인들도 한국 음악이 궁금해서 제 발로 극장을 찾는 시대”라고 했다.

고된 작업인 만큼 체력 부담이 없지 않다. 오페라는 인물이 노래하는 장면 외에도 이야기에 반주를 깔아주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 등 30~40개의 크고 작은 곡이 필요하다. 1년을 작업한다면 매일 최소 6시간 이상 고강도 집중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님이 90대까지 장수하셨으니 나도 오래 살지 않겠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남는 시간에 작업하는 게 내 건강 관리”라며 웃었다. 악상이 잘 떠오르는 밤에 주로 작업한다.

그러다 지치면 다시 전기톱과 드라이버를 찾는다. 귀를 때리는 모터 소리에 몰두하면 머릿속에 24시간 떠오르는 악상이 잠시 멈춘다. 낮에 이런 육체노동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말끔하게 비워져 밤에는 작곡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작곡은 아기를 낳는 일과 비슷해요. 산통이 시작되면 완성될 때까지 작업을 멈출 수가 없어요.”

그의 오랜 뚝심은 클래식이라는 서양 그릇 안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왜 한국인이 한국 음악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평생 음악으로 답해 왔다고 했다. “3월에 컴백 앨범으로 ‘아리랑’을 내는 BTS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 음악은 국악이에요. 흔히 아는 아리랑 말고 ‘정선 아리랑 엮음’처럼 해학이 녹아 있는 음악을 들어보고 세계에 널리 알려주기 바랍니다.”

클래식 작곡가 이영조 선생이 1일 오후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직접 만든 풍경(風磬) 작품들 앞에 앉아 있다. /박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