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린 성금 전달식에 참석한 쪽방촌 주민들 모습. /사랑의열매

지난 26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 노인 둘이 찾아와 천원짜리 지폐가 뒤섞인 성금 292만원을 전달했다. 유명인도, 눈에 띄는 액수도 아니었지만 사랑의열매 직원들이 나와 성금 전달식을 열며 반겼다. 그만큼 성금에 담긴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날 성금을 전달한 이는 인천 쪽방촌에서 사는 권영자(70)씨와 이동승(84)씨였다. 인천 쪽방촌 주민들이 폐지를 줍고 부품 조립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한 푼씩 모아 더 힘든 이웃을 위해 나눈 것이다. 권씨는 “계속 받고만 있을 수 없잖아요”라며 “정작 저는 기부를 조금밖에 못 했는데, 오늘 이렇게 성금을 직접 전달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인천 쪽방촌 주민들의 기부는 올해로 18년째다. 인천 중구 개항동, 동구 만석동, 계양구 효성동 쪽방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지금까지 누적 기부액만 3024만원이다. 2008년 만석동 쪽방촌에서 겨울 방한 물품을 나눔 받던 한 주민이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받아요”라며 “더 가난한 이웃을 돕자”고 제안한 것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인천 쪽방촌을 줄곧 지원해온 이준모(61) 해인교회 목사는 “그때 기부를 제안한 분이 본인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주민들에게 1000~2000원씩 받으시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이듬해엔 한 주민이 LPG 가스통을 반으로 자른 뒤 그 안에 동전을 가득 채워 가져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20일 연말을 맞아 기부에 참여한 인천 중구 개항동 쪽방촌 주민들 모습. /인천쪽방상담소

기부는 이제 쪽방 주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매년 연말이 되면 자발적으로 기부 준비에 나선다. 권씨는 올해 볼펜, 장난감 부품을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성금을 마련했다. 쪽방촌에 산 지 50년이 넘었다는 그는 “제게 쪽방촌은 이제 고향”이라며 “이곳에서 계속 기부를 실천할 생각”이라고 했다. 쪽방살이 6년 차인 최모(73)씨도 올해 기부를 위해 직접 폐지를 주웠다. 6년 전 폐암 수술을 받은 그는 암 전이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최씨는 “몸이 안 좋아 운동도 하고 좋은 일도 할 겸 유모차를 끌고 소주병과 폐지를 주웠다”고 했다. 온종일 거리를 배회하며 폐지 30kg를 모아 받는 돈은 1800원 남짓이다. 그런 돈을 모아 기부한 최씨는 “기부를 더 많이 못 해 아쉽다”고만 했다.

엄경아(53) 인천쪽방상담소장은 “비상금까지 기부하려 해 말리는 경우도 있다”며 “넉넉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먼저 떠올리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