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무대에서 ‘배추 보이’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8년 전인 2018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한국 동계 올림픽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상호(31)는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 나서 0.01초 차로 결승에 오르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의 설상(雪上) 종목 메달리스트가 된 그에게 팬들이 ‘배추 다발’을 건넸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 출신으로 눈 덮인 고랭지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배운 그의 별명(배추 보이)에서 착안한 선물이었다. 그가 경기를 치른 휘닉스 파크 슬로프는 ‘이상호 슬로프’로 이름이 바뀌었다.
어느덧 30대가 된 이상호는 여전히 현역으로 설원을 누비고 있다. 그는 다음 달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역사에 도전한다. 최근 기세도 나쁘지 않다. 지난 25일 오스트리아 지몬회헤에서 열린 FIS(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서 4위에 올랐다. 이상호는 “올 시즌 컨디션이 좋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밀라노에서 최고의 레이스를 펼친 뒤 웃는 얼굴로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4년 전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선 평창 때와 반대로 0.01초 싸움에서 밀려 4강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한국인 최초로 종합 1위를 달성하며 평창 은메달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밀라노 올림픽 1년여 전인 지난해 초 왼쪽 손목 부위 골절 수술을 받아 멈춰 섰다가 돌아온 뒤에도 최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이상호는 “부상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여기고 복귀에만 집중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특히 ‘멘털’이 어릴 때보다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이상호는 유망주 시절부터 “한국에서 스노보드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번 밀라노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전체 남자 주장을 맡았다.
최근 스노보드에서 하프파이프의 이채운(20)과 최가온(18) 등 유망한 후배들이 등장한 것에 대해선 “이제 스노보드 분야가 ‘나 혼자만의 도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대견한 마음이 든다”며 “후배들이 나보다 더 큰 발자취를 남기도록 경험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이상호가 출전하는 평행대회전 경기는 다음 달 8일 오후 5시 30분(한국 시각) 열린다. “후회 없이 경기한 뒤 나 자신에게 ‘평창 배추 보이부터 여기까지 버텨줘 고맙다. 정말 잘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