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만 보내는 기부는 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가 더 중요하죠.”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복지재단에서 만난 인도인 상그라즈카 히만슈(46)씨의 말이다. 지난 1999년 한국에 들어와 올해로 한국살이 27년 차인 그는 매달 1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지역 사회에 기부한다. 그의 기부 철학은 특별하다. 현금이 아닌 ‘물품 기부’ 방식을 고수한다. 단순히 돈을 전하기보단 상대의 삶에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을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연말이던 지난해 12월 히만슈씨는 용산복지재단에 100만원 상당의 가정용 온풍기 13개를 후원했다. 온풍기는 용산재가노인복지기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 전달됐다. 한 달 전인 11월에는 신발장·선풍기·무선청소기·제습기 등을 용산지역아동센터에 보냈다. 매달 100만원씩 후원하면서 정작 본인은 27년째 용산구 보광동의 한 구축 아파트에 산다. 그는 “오히려 선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히만슈씨는 한국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삼촌 회사에 취직하라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27년 전 한국에 왔다. 평생을 더운 인도에서 살아온 스무 살 청년에게 11월의 한국 겨울은 너무 추웠다. 힌두교 신자로 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도 선별해 먹는 그에게 ‘채식’ 개념이 없던 당시 한국은 친해지기 어려운 나라였다. 주말마다 인도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해 “돌아가겠다”며 투정도 부렸다. 그런 히만슈씨가 한국에 정착하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은 건 아버지의 입원이었다. 위독한 병은 아니었지만 히만슈씨에겐 그 순간이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3년 동안 인도에 한 번도 안 가고 일만 했다.
그렇게 일해 2009년 ‘바넷 앤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원단·섬유 등을 수출하는 회사다. 2014년엔 수출 실적 550만달러를 달성해 무역의 날 상도 받았다. 그는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친구도 한국인 위주로 사귀었다.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그의 ‘형님’ 김현태(58)씨도 2012년 우리은행 명동지점에서 거래하며 얼굴을 텄다. 김씨는 “타인을 도와주면서 힘을 얻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예전부터 고향인 인도에 매달 170만원씩 기부해 오던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의 기부도 마음먹었다. 보광동 주민센터를 찾아 기부 의사를 밝히고 용산복지재단과 연결되어 매달 100만원 상당 물품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이렇게 기부할 수 있다”며 웃었지만 본심은 “누군가에게 선행을 했다는 사실이 제게 안겨주는 에너지가 더 크다”고 했다. 용산복지재단 관계자는 “매달 대상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여쭤보시는 모습이 인상 깊다”고 했다.
“대부분이 기부하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아니에요.” 히만슈씨는 본인의 이야기를 접한 1000명의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선행을 시작하게 되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다운되어도 선행으로 스스로를 ‘업’ 시킨다는 그는 앞으로도 마음을 전하는 데 소홀해지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