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30년이 한국 바둑의 성장 역사라 할 수 있죠.”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은 한국이 세계 바둑 최강의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스타를 배출해 낸 무대였다. 1996년 시작한 1회 대회 우승을 포함해 통산 4차례 정상에 선 이창호(51) 9단은 “바둑계에 정말 큰 기여를 한 대회”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첫 출전을 떠올리며 “이 대회가 패기 넘치는 신예 기사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치도록 후원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으로 2001년 이세돌(당시 3단)과의 결승에서 2패 뒤 3연승으로 우승한 것을 꼽았다. 이창호는 “상상을 뛰어넘는 신예의 등장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정말 열심히 (바둑을) 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당시 이창호에게 막혀 눈물을 삼킨 이세돌은 2년 뒤 7회 결승에서 이창호를 3대1로 꺾고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이창호의 스승으로 바둑계 통산 최다 우승(161회) 기록 보유자인 조훈현 9단에게 LG배는 아쉬운 기억이 많다. 준우승만 한 번이고, 끝내 우승컵을 안지 못했다. 그는 “바둑계에서 상징적인 대회여서 꼭 한 번 우승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LG배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2002년 결승에서 조훈현을 꺾은 유창혁은 그랜드슬램(LG배, 잉씨배, 후지쓰배, 삼성화재배, 춘란배 우승) 고지에 올랐다. 그는 “수많은 기전에 참가했지만, LG배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사들이 집결하는 무대는 없었다”고 했다. 세계 바둑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戰場)으로 꼽히는 LG배는 ‘연패(連霸)’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30년간 어떤 기사도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한 적이 없다.
현재 바둑 세계 1위인 신진서 9단은 “LG배는 내 바둑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그는 “2022년 결승 1국에서 중국의 양딩신 9단에게 대역전승을 거둔 것이 내 바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판이었다”며 “그날의 승리가 이후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신진서는 LG배 3회 우승을 포함해 농심배와 잉씨배 등 주요 기전을 휩쓸며 세계 1인자로 우뚝 섰다.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은 파격적인 대회 운영으로도 주목받았다. 1회 대회 8강전과 4강전을 미국 뉴욕에서 열었고, 5회 대회 땐 프랑스 파리에서 8강전을 개최해 바둑 세계화를 위한 씨앗을 뿌렸다. 경기 운영 면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해 왔다. 1998년(3회) ‘덤 6집 반’ 제도, 2005년(10회) ‘흑백 선택권(돌 가리기)’을 도입하자 다른 국제 기전들도 같은 시스템을 들여왔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LG배는 오랜 기간 한국 바둑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바둑계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한 대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