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장창현 한맥중공업 회장. 한맥중공업은 오는 12일 연세대 신소재공학과에 100억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장 회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장경식 기자

“철강 기술자가 돼 조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 달라던 교수님의 절절한 가르침을 후배 세대에도 전하고 싶습니다.”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장창현 한맥중공업 회장(76)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세대 금속공학과 69학번인 장 회장과 한맥중공업은 이달 12일 금속공학과 후신인 신소재공학과에 한맥중공업 명의로 100억원을 기부한다. 연세대 관계자는 “거액의 기부금은 보통 5~10년 정도로 분할해서 내는 경우가 많다. 거액을 한 번에 현금으로 내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장 회장은 대학교 2학년 때인 1970년 금속공학과에 부임한 고(故) 양훈영 교수의 가르침을 50년 넘게 잊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양 교수는 강의 첫날 칠판에 ‘싸게’ ‘좋게’ ‘많이’라고 쓴 뒤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은 나라의 식량이 될 ‘쇠’를 이렇게 만들어야 하네. 내가 그렇게 가르칠 예정이니 잘 따라오시게.” 경성제대 출신인 양 교수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설움을 이야기하다 수차례 눈물을 보였다. 수업 도중 틈만 나면 “자네들은 졸업하면 반드시 제철소 현장에서 헬멧을 쓰고 워커를 신은 철강 기술자가 됐으면 좋겠다”며 “수출로 외화를 벌고 조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양 교수는 일본의 금속 관련 잡지들을 매달 복사해 나눠준 뒤 학생들에게 일본어로 번역·발표하게 했다. 장 회장은 “당시 철강 분야에서 세계 최강 수준이었던 일본을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다”고 했다. 이어 “양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기업을 일굴 수 있었다. 후배들도 양 교수님을 기억하며 공학도로서 나라를 빛내 달라”고 했다.

장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양 교수 당부대로 4년간 철강 회사에서 근무했다. 1978년 한맥중공업의 전신인 한맥산업을 세웠다. 철강 구조물을 제조해 중동 건설 현장에 납품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1992년 초 외상으로 철강을 대거 수입해 간 일본 업체가 파산하면서 경영난을 겪었다. 이때도 양 교수는 장 회장 곁에 있었다. 양 교수는 그에게 통장 5개를 건네면서 “그동안 내가 모은 돈 전부니 이걸로 회사를 살리라”고 했다. 장 회장은 “그 돈을 차마 받지는 못했지만, 교수님의 마음 덕분에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고 했다.

회사가 안정되고 난 뒤 양 교수를 찾았지만, 은사(恩師)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장 회장은 매일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전복을 사와 죽을 끓였다. 그러나 1997년 5월, 장 회장이 중국 출장을 떠나 있던 사이 양 교수는 76세 나이로 별세했다.

철강 구조물을 제조하는 한맥중공업은 연 매출 3500억원 규모 회사로 성장했다. 장 회장은 “사업이 승승장구해 2012년에는 2억불 수출탑까지 받았다”며 “그러나 ‘교수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수출 역군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장 회장은 “머리 좋고 뛰어난 학생들이 돈 때문에 의대로 진학하는 세상”이라며 “우리 학과 후배들은 양 교수님의 유지(遺志)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공학에 전념해 달라”고 했다. 연세대는 기부금 100억원을 공학관을 확충하는 데 쓸 예정이다. 또 ‘장창현-신소재학과 기금’을 만들어 석좌교수직을 신설하고 우수 학부생을 대상으로 장학금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기금은 장 회장의 기부액과 함께 학과 교수진·학과 동문회 기부금을 합쳐 조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