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동안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대신해 법률 소송을 진행해온 법무법인 율촌의 러시아·CIS 전담팀. 왼쪽부터 한혜진 통역사, 정규진 변호사, 이화준 변호사, 조은진 변호사, 김영주 변호사, 이태은 변호사. /장경식 기자

“러시아에서의 법적 분쟁은 출발선부터 외국 기업에 불리합니다. 강력한 행정 권한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소송을 포기해 왔지요.”

지난달 초 서울 삼성동에서 만난 법무법인 율촌의 이화준 변호사는 그 통념을 깨온 인물이다.

그는 최근 한국 의료기기 업체 오스템임플란트를 대리해 러시아 중앙관세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 부당하게 부과된 과징금 126억원을 전액 반환받았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이자 33억원까지 추가로 받아내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러시아 관세 행정의 관행처럼 여겨지던 ‘사후적 관세율 변경’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사례였다. 이번 승소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 35년 동안 전례없는 판결로 회자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국내 로펌 가운데 유일하게 6명으로 구성된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전담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팀원들은 러시아어·영어·한국어 3개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며 “러시아 법정 싸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어라서 번역이나 통역을 통하면 한계가 있다”고 했다. 또 “러시아 법원과 행정기관을 상대할 땐 법률 문장 하나, 용어 하나가 판결을 좌우하기 때문에 6명이 총동원된다”고 했다.

이번 126억원 과징금 사건에서도 이 구조는 그대로 작동했다. 러시아는 소송 규모와 관계없이 1심이 단독판사 체제로 진행돼 판사 개인의 판단 영향이 크다는 점을 활용했다. 사건을 하나로 묶지 않고 통지서 발송 순서에 따라 3건으로 분리해 제소한 전략은 러시아 사법 구조를 정확히 파고든 것이었다.

이 변호사는 러시아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법학부와 동 대학원을 최우등으로 마쳤다. 군 복무를 위해 귀국해 국방부 조달본부와 방위사업청에서 러시아 무기 도입 프로젝트인 ‘불곰사업’의 법률 자문을 하면서 러시아의 국가 시스템과 관료 구조를 직접 경험했다.

이 변호사와 러시아·CIS 팀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기업들의 러시아 내 법정 싸움을 도맡아왔다.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공장 매각 및 철수 자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장 임대 및 제재 대응, 대한항공의 대규모 과징금 감액 소송, 한국항공우주공사(KAI)의 러시아 군사 기술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맡아 승소했다. 모두 러시아 정부 또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이 변호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로펌이 러시아에서 철수했지만, 율촌은 모스크바 사무소를 유지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남아 있는 한국 기업과 철수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린 기업을 위한 법적 창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