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언씨가 지난달 충북 충주에서 라지볼 시범을 보이며 웃고 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네가 제일 오래 살겠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신현종 기자

“탁구인데, 정확히는 탁구가 아니죠. 하하!”

지난달 충북 충주 향군회관 탁구장에서 권오언(85)씨가 또래 동호인 10여 명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탁구채를 힘차게 휘둘렀다. 1941년생인 권씨는 “우리가 하는 건 일본에서 노인들을 위해 개발한 라지볼”이라며 탁구공, 아니 라지볼을 들어 보였다.

“일반 탁구공보다 지름은 4㎜ 정도 큰데 무게는 조금(0.3g) 더 가벼워요.” 일반 탁구공보다 회전이 적은 라지볼은 공의 궤적이 단순해 초보자나 시니어 세대도 쉽게 칠 수 있다. 네트도 일반 탁구보다 2㎝ 높고, 경기는 3세트 만에 끝난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권씨는 탁구장에서 100m쯤 떨어진 단독주택에서 산다. 그의 집 지하 차고에는 탁구공을 자동으로 날려주는 탁구 로봇과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거의 매일 탁구장에 가는 데도 성에 안 차 혼자 연습을 한다”면서 “탁구 로봇에 200만원 정도 거하게 투자했다”며 웃었다.

‘라지볼 전도사’로 불리는 권씨는 40년 넘게 탁구와 연을 이어왔다. 그는 1979년 당시 고3이던 첫째 딸을 백혈병으로 떠나보냈다. 이어 권씨의 부친과 모친마저 연이어 세상을 떠나자 권씨와 아내는 우울에 갇혔다. “저는 그래도 학교에 나가 일을 했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아내는 정말 힘들어했죠.”

그때 옆집에 살던 이웃이 매일 아침 권씨의 아내를 탁구장으로 데려갔다. 아내는 탁구를 치며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고, 권씨도 자연스럽게 탁구채를 잡았다. 권씨는 “돌이켜보면 탁구가 아내와 나를 살려준 거나 다름없다. 지금은 건강 지킴이 노릇을 해준다”고 했다.

권씨는 2003년 교직에서 물러난 뒤 본격적으로 탁구의 매력에 빠졌다.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아내를 탁구장에 데려다준 다음 오후에 탁구장에 나가 라지볼을 즐기는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탁구에 대한 열정은 지역 사회 활동으로 이어져 충주시 라지볼 동호회장, 충북 탁구협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권씨는 퇴직 후 가끔 친구들과 등산을 했고, 지금은 주변에서 골프를 하라고 권유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탁구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권씨는 “10여 년 전 무릎에 인공관절 시술을 받았는데, 등산이 무릎에 무리가 된 것 같아 후회된다”며 “지금도 오래 걷는 건 힘든데, 라지볼은 땀 날 정도로 치고 힘들면 앉아서 쉬엄쉬엄 할 수 있으니 참 좋다”고 했다. 공에 회전이 덜 걸리고 천천히 넘어오니 부상 위험도 적다고 한다.

권씨는 “탁구는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고 노년에 필요한 근력을 키워준다”며 “동호회 사람들과 커피도 마시고 종종 전도 부쳐 먹으며 얘기 나누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충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가나가와현의 도시와 교류전을 만들었어요. 지금도 한 해는 우리가 일본에 가고, 다음 해는 일본 노인들이 충주에 와서 같이 라지볼을 합니다.”

권씨는 요즘 동창회에 가면 “네가 제일 오래 살 것 같다”는 덕담을 듣는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당뇨나 혈압도 없는데, 앞으로 이렇게 5년 정도는 더 라지볼을 칠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