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늘 한국에서 연구하길 꿈꿔왔습니다.”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양자과학연구단의 초대 단장으로 부임한 김기환(52)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양자 분야에서 한국은 아직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수준이지만,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우리도 선두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김 단장은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직을 지난 28일 사직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최근 첨단 과학 분야의 석학들이 잇따라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대학의 파격적인 대우를 포기하고 한국 복귀를 택한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학계에서 나왔다.
김 단장은 29일 대전 IBS 본원에서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야 양자 분야가 한국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과거엔 양자 전문가를 홀대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당시 떠밀리듯 해외로 떠났지만, 이젠 내가 신진 과학자들의 성장 기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김 단장은 “최근 양자 분야가 전략 기술로 부상하면서, 주변에서 한국에 기여할 기회를 고민해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IBS에서 독립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내년까지 연구단에 신진 과학자 40여 명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 단장은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와 미국 메릴랜드대를 거쳤다. 2011년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부교수로 임용됐고 2021년에 정교수가 됐다. 그는 양자 컴퓨팅과 관련해 이온 트랩(Ion trap) 기술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전자기장으로 이온을 잡아두는 이온 트랩 기술은 양자 컴퓨터의 연산 정밀도를 높여주는 핵심 기술이다. 칭화대에서도 이온 트랩 연구단을 이끄는 총괄 책임자(PI)로 활동해 왔다.
김 단장은 앞으로 양자 시스템의 연산 능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신형 양자 컴퓨터가 활용하는 큐비트 단위는 100~1000개 수준이다. 그런데 이를 수백만 큐비트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10여 년 전 국내 대학 10여 곳에 지원했지만 교수 임용에서 잇따라 탈락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중국 대학을 선택했다. 김 단장은 “당시 생소한 양자 분야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이 적었다”며 “반면 중국은 미래를 보고 기초과학부터 응용과학까지 적극적으로 투자해 왔다”고 했다.
김 단장은 “국가가 주도해 양자 연구를 추진하는 중국이나, 거대 기업들이 연구를 이끄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양자 분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지 4~5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기초과학 단계에서부터 연구해야 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그는 “진정한 양자 계산을 구현하려면 양자 컴퓨터가 수백만 큐비트 규모에 이르러야 하는데 현재 가동 가능한 장비는 수백 큐비트 수준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이 쌓여 있다”고 했다.
IBS는 김 단장을 영입하며 본원에 5개 층 규모의 ‘양자동’을 신축하고 연구 설비를 들여놓고 있다. 내년부터는 양자 분야 연구단들을 추가로 출범시켜 ‘양자정보과학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