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생선구이 가게에 히잡을 쓴 말레이시아 외국인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스답(말레이시아어로 맛있다는 뜻)!”

지난 2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에 있는 생선구이 식당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40여 석을 꽉 채운 손님들은 히잡(이슬람교도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두른 무슬림 관광객이었다. 이들은 익숙한 듯 메뉴판 사진을 가리키면서 종업원에게 ‘디스 원’(이거 주세요)을 외쳤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와 삼치,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 테이블에 오르자 “뜨르바익(최고)!”이라 외쳤다.

이 식당은 원래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무슬림 관광객 사이에서 ‘할랄(Halal) 안심 식당’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2~3년 사이 외국인 매출 비중이 70%까지 올랐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란 뜻이다. ‘할랄 식품’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교도(무슬림)가 먹어도 되는 식품을 말한다.

그래픽=이진영

K팝, K뷰티 바람을 타고 한국을 찾는 무슬림 관광객이 늘면서 이들의 ‘식도락 지도’가 바뀌고 있다. 끼니마다 서울 이태원 등을 찾아 케밥이나 양고기로 식사를 해결하던 무슬림들이 할랄 기준에 맞는 한국 식당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무슬림 관광객은 2022년 36만여 명에서 2023년 80여 만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작년엔 103만명이었고 올해도 10월까지 99만8000여 명이 한국을 찾아 2년 연속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이슬람교(KMF) 할랄위원회 등에서 ‘할랄 인증’을 받은 식당은 전국적으로 15곳 남짓이다. 이 때문에 무슬림 관광객들은 최근 소셜 미디어와 전용 음식·여행 앱을 통해 ‘할랄 프렌들리(친화적)’ 식당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공식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돼지고기와 알코올 성분을 쓰지 않거나, 해산물·채소 위주 메뉴를 파는 식당을 찾아 먹어본 뒤 후기를 공유하는 식이다.

26일 오후 1시쯤 찾은 서울 중구 명동의 한식당도 무슬림 관광객들로 붐볐다. 히잡을 쓴 외국인 손님들이 식당 안 계단과 통로에 줄지어 서 있었다. 유모차에 탄 아이와 함께 방문한 가족 단위 손님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가공육 없이 할랄 방식으로 조리한 부대찌개와 김밥을 주로 시켰다. 벽면에는 ‘식당 내 기도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서울 명동·신촌·북촌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젓갈을 쓰지 않는 김치볶음밥, 콩고기를 쓰는 부대찌개 같은 ‘무슬림 맞춤형 요리’를 파는 식당도 이들에게 인기다.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심모(59)씨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늘면서 가공육을 아예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무슬림들은 사찰 음식점도 즐겨 찾는다. 2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사찰 음식점에 히잡을 쓴 여성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벽에 ‘Vegan Restaurant(채식 식당)’이란 간판이 걸린 이곳에서 무슬림 여성들은 콩불고기 쌈 정식, 표고버섯말이, 고기 대신 버섯을 튀겨 만든 매실 탕수채 등을 주문했다. 식당 직원 송태현(30)씨는 “절밥 조리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무슬림 손님들을 상대로 쿠킹 클래스도 운영한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무슬림 관광객의 소비 패턴이 익숙한 외국 음식을 찾는 소극적 단계에서, 종교적 기준 내에서 즐길 수 있는 한식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소비하는 단계로 진화하는 양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