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에 몰입하는 게 재능이라면 저도 재능이 있긴 하네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천재가 노력을 즐기면 어떻게 될까. 당구 3쿠션 세계 랭킹 1위 조명우(27·서울시청)는 그 질문에 답을 알려주는 선수다. “당구를 칠수록 보완하고 싶은 것 투성이”라는 그를 경기도 시흥의 개인 연습장에서 만났다.
당구 선수 조명우에게 2025년은 그야말로 최고의 해였다. 지난 3월 아시아캐롬선수권대회(대륙 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7월 월드컵, 8월엔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작년 9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부터 꼭 1년 만에 당구계 주요 타이틀 4개를 모두 휩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3쿠션 당구 선수의 그랜드 슬램은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마르코 자네티(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아시아에선 조명우가 처음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월드컵까지 우승한 그는 야스퍼스의 4연패를 저지하며 개인 통산 처음으로 월드컵 시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당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냉정하다. “흔히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산체스 같은 선수들이 수십 년 최정상에 있는 것과 달리 난 겨우 몇 달 동안 세계 1위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에 줄곧 랭킹 1위를 지키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았다. UMB(세계캐롬당구연맹) 시스템상 1년 내내 랭킹 1위를 하려면 2년 반 정도 최상위권 성적을 내야 한다.
1998년생 조명우의 당구 인생은 유치원 때 시작됐다. 집 아래층에 당구장이 있어 수시로 큐를 잡고 놀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당구 동호인인 아버지에게 스트로크와 시스템(당구공의 경로값 공식) 계산 등을 배웠다. 조명우는 “유튜브 같은 것도 없어서 눈 뜨고서 잘 때까지 연습만 반복할 뿐이었다”며 “기본기는 물론 집중해서 연습하는 힘까지 내 당구의 99%는 아버지의 ‘조기 교육’ 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최고 무기로 꼽히는 몰아치기 능력도 어린 시절 연습의 산물이라고 했다.
중3 때 경기도 대회에서 어른들을 제치고 우승해 신동 탄생을 알렸다. 고3 때는 3쿠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라 당구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사실 중3에서 고3 사이 3년간 발전이 없다고 느껴서 많이 괴로웠다. 하지만 결국 계단을 뛰어오르듯 기량이 훌쩍 상승한 걸 보고 성실히 훈련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2020년부터 군 복무를 한 뒤 2022년 12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월드컵에서 산체스를 꺾고 개인 첫 월드컵 우승을 거뒀다. 이어 올해 다시 한번 퀀텀 점프를 이뤄내며 월드컵 2승을 추가하는 등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우승을 해도 저녁 먹고 나면 감정이 가라앉고, 다시 할 것(연습)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졌을 때는 아쉬움이 조금 오래가는데, 그것도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진다”고 말했다. 수도승 같은 모습이었다.
1위 장기 집권을 위해 그가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건 뭘까. 그는 정교한 파워 조절을 통한 난구 해결이 장기인 선수다. 공의 경로가 그림과도 같다고 해 ‘조 화백’으로도 통한다. 그런데도 그는 “두께 조절 등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이닝 마무리 시 수비 능력 등 경기 운영 능력도 보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모든 부분을 한 단계씩 강화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모든 대회 우승을 목표로 달릴 것”이라고 했다.
당구 3쿠션 세계 최강
조명우의 2025년
3월 아시아캐롬선수권 우승(한국)
7월 포르투 월드컵 우승(포르투갈)
8월 월드게임 우승(중국) 당구 ‘그랜드 슬램’ 달성
11월 광주 월드컵 우승(한국) 세계 랭킹 1위 탈환
12월 2025년 월드컵 종합 우승 확정
자료: UMB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