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명동역 6번 출구 앞. 탄탄한 근육과 군살 없는 몸을 자랑하는 ‘몸짱 산타’들이 대거 행진하며 소리를 질렀다. “생명 나눔 산타와 함께 생명을 선물해요”라는 구호였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우렁찬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이들 몸짱 산타는 사후 장기 기증 서약을 한 헬스 트레이너들이다. 이들은 이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개최한 장기 기증 캠페인 ‘나인 퍼레이드(nine parade)’에 참가해 명동을 행진했다. 기증자 8명, 뇌사 장기 기증자의 유가족 12명도 함께였다.
‘나인 퍼레이드’는 뇌사 시 장기 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세대 헬스 트레이너인 아놀드 홍(54·본명 홍길성)씨가 ‘내 몸을 건강하게 지켜 생의 마지막 순간 건강한 장기를 기증하자’는 취지로 2015년 시작했다. 올해는 장기 기증자와 뇌사 장기 기증자 유족들도 캠페인에 참가했다.
1993년 신장을, 2005년 간을 기증한 이태조(64)씨는 이날 0도 가까운 추운 날씨에도 산타 망토 아래에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었다. 이씨는 1993년 소아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만난 신장병 환아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그는 “장기를 기증한 후에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수십 년째 하루에 2시간씩 배드민턴·자전거 등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작년에 심장·폐·간·좌우 신장을 5명에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한영광(당시 31세)씨의 어머니 홍성희(64)씨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홍씨는 “착하고 키도 큰 우리 아들이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살리고 떠났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고 했다.
2015년 ‘나인 퍼레이드’를 시작한 홍씨는 “첫 캠페인 당시 기온이 영하 7도였는데, 혈액 투석 환자들이 견디는 고통에 비하면 잠깐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10년 동안 이어 온 생명 나눔 산타의 행진이 더 많은 시민의 장기 기증 약속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홍씨의 권유로 2021년 장기 기증을 서약하고 2022년부터 행사에 참여한 헬스 트레이너 찰스 조(64·본명 조우순)씨는 “작년에는 영하 10도의 기온에 눈까지 왔는데, 올해는 장기 기증자와 유족들이 오셔서 그런지 날씨도 따뜻하다”며 “장기 기증자들을 대상으로 헬스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장기 기증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 등을 기증한 사람은 3931명으로 전년 대비 11.3% 줄었다. 반면 국내 장기 이식 대기 환자는 10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해 작년 5만 명을 넘겼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는 “사회에서 한 명만 살려도 ‘의인’이라고들 하는데 장기 기증은 여러 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기증자들을 격려하고 동참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