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버거' 사장 이영철씨가 지난 2020년 서울 성북구 가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 앞에는 고대생들에게 '반드시 재기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아 2019년 출시한 '돈 워리 버거'가 놓여 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에서 20년 가까이 1000원짜리 수제 버거를 팔아 고려대 명물이 된 ‘영철버거’ 사장 이영철(57)씨가 폐암 투병 끝에 13일 오전 별세했다. 생전 고려대에 1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고려대 학생을 도운 이씨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온·오프라인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찾은 서울 성북구 영철버거 앞에는 고려대 재학생들이 두고 간 꽃다발 10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빈소 조문 이후 매장을 찾았다는 고려대 경영학과 김현종(25)씨는 “군 복무를 할 때 군복을 입고 휴가를 나와 매장을 방문하면 사장님께서 고생한다며 무료로 버거를 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오래 영업을 하시길 바랐는데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고, 자주 찾아뵙지 못해 후회가 된다”고 했다. 국화 꽃다발을 들고 이곳을 찾은 정치외교학과 김지호(23)씨도 “정경대 학생회를 할 때 사장님께서 음료수도 보내주시고, 이곳에서 회식도 자주 했다”며 “부고 소식을 듣고는 너무 속상했는데,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씨의 온라인 부고장에도 “아버지처럼 늘 학생들에게 넉넉한 마음과 온기를 전해주신 영철버거 사장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제가 사이다 좋아하는 걸 늘 기억해주셨던 사장님, 저도 사장님 오래 기억할게요” 같은 메시지가 1100개 넘게 달렸다.

1968년 전남 해남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이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국집, 군복 공장 등을 전전했다. 1992년에는 막노동판에까지 뛰어든 그는 1998년 허리를 다쳐 이 일도 그만두게 됐다. 신용 불량자가 된 이씨는 마지막이란 각오로 2000년부턴 손수레를 끌고 고려대 앞에서 1000원짜리 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핫도그빵 사이에 고기 볶음과 양배추, 소스 등을 넣은 ‘스트리트 버거’가 가성비 좋다는 소문이 났다. 하루에 버거가 3000개까지도 팔리면서 한때 전국에 분점을 80여 개 낼 정도로 성장했다.

재료 값이 올랐을 때도 버거 가격은 올리지 않았다. 양배추와 청양고추 가격이 치솟아 버거 하나를 팔 때마다 수백 원 적자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과의 ‘1000원’ 약속은 지켰다. 2004년부턴 고려대에 수차례 2000만원씩 1억원 넘게 기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영철버거에도 제동이 걸렸다. 박리다매 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분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2009년에는 고급 수제 버거로 리브랜딩까지 했지만, 결국 2015년 폐업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씨가 기부한 장학금의 혜택을 받은 고려대 학생들이 이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당시 2500여 명의 고대생이 모금에 나서 6800만원이 모였고, 이를 토대로 영철버거는 재개업할 수 있었다. 재개점한 영철버거는 월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2년 만에 다시 문을 닫았지만, 이씨는 딸의 퇴직금까지 빌려 이듬해 다시 매장을 냈다.

이후 그는 6년간 매일 3시간만 자면서 5억원의 빚을 조금씩 갚아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마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인은 지난해 7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최근까지 항암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치료 초기에는 병이 호전되는 추세였지만, 두 달 전부터 갑자기 병세가 약화돼 입원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영철버거도 영업이 당분간 중단된 상황이다.

'영철버거' 사장 이영철씨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4일 오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인 김지호씨가 추모 꽃다발을 들고 가게 앞에 서 있는 모습.가게 앞에는 고인을 위한 꽃다발 9개가 더 놓여 있다./김병권 기자

이날 오전 방문한 서울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도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우회와 고려대 출신 김상욱 국회의원의 근조기가 놓여 있었다. 고려대 졸업생들이 보낸 화환도 다수 보였다. 이날 대학교 친구 8명과 함께 빈소를 찾은 고려대 야구 동아리 ‘백구회’의 회장 정모(23)씨는 “사장님이 오랫동안 우리 동아리에 물값 등을 꾸준히 지원해주셨다”며 “올해도 지원을 해주시고, 동아리원끼리 종종 버거집에 가서 밥도 먹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빈소에서 본지와 만난 이씨의 한 가까운 가족은 “사람 목숨이 다 팔자에 달린 거지만, 환갑도 못 넘기고 간 게 정말 안타깝다”며 “고인이 고려대에 선행을 많이 해서인지 지금까지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200명은 넘게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도 이날 오후 4시 30분쯤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김 총장은 조문 이후 본지와 만나 “고인을 기리기 위해 고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조성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학생회관에도 이영철 사장님을 위한 기념패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고려대는 고인의 장례식 비용도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