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이런 말을 주위에 하곤 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노인이 될 거라고. 그러니 그분들을 다른 시대의 낯선 이들로 보지 말고, 우리의 미래 모습으로 봐달라고요”
지난 25일 오후 7시 10분쯤 찾은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 3층. 봉사 단체 ‘코리아 레거시 커미티(Korea Legacy Committee·KLC)’의 대표 고지나(42)씨의 환영사가 시작되자 이날 자선 행사를 찾은 후원자와 봉사자 350명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KLC는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미교포 출신 마이크 김(41·한국 이름 ‘김진’)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시아·태평양 및 한국 총괄이 지난 2015년 만든 봉사단체다. 식료품이나 직접 만든 도시락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에게 전달하는 게 주요 활동이다. 봉사자는 물론 후원금을 내는 주체도 20~30대 위주인 이른바 ‘MZ 봉사단체’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KLC를 만든 이유에 대해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2015년 겨울 한국에 왔는데, 지하철역에서 박스를 깔고 앉아 껌을 팔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보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한국이 유산(legacy)처럼 존재하는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걸 해결하고자 KLC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김씨는 단체 이름에 한국의 청년들이 봉사를 통해 키운 리더십이 유산(legacy)처럼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KLC 창립 10년을 기념하는 한편 도시락 봉사를 지속하기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 열렸다. 이 행사를 포함해 올해에만 1억5000만원이 넘은 후원 금액이 모였고,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녀인 김영 순천향대 교수의 축사 등이 이어졌다. KLC는 ‘진심이 담긴 봉사만큼 중요한 게 재미있는 봉사’라는 신념으로 2016년 연말부터 이런 형식의 자선 행사를 열고 있다.
10년간 KLC가 빈곤 노인들에게 전달한 식사 수만 해도 27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도시락을 구매해서 무료 급식소에 보냈지만, 2022년부터는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자체 주방 ‘레거시 키친’도 세워 직접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 전달한 도시락 수도 4만6785개다. 운영진과 봉사자들이 한달에 6~10번 정도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인 광복회 회원들에게 레거시 키친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KLC 창립자인 김씨가 KLC의 리더로서 공식적인 행사에 참가하는 마지막 자리이기도 했다. 김씨는 “개인적으로 KLC 활동을 10년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팀원들과 봉사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앞으로도 도시락이든 뭐든 노인들이 원하는 걸 찾아 매주 열심히 한 주 한 주 봉사하는 걸 목표로 활동해줬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KLC는 앞으로 봉사 활동 범위도 넓힐 계획이다. 고지나 KLC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주로 빈곤 노인의 식사 문제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형태의 지원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며 “겨울철에는 방한복 후원을 유치해 도시락과 함께 전달하고, 도배 봉사 등 주거 환경 개선에도 참여함으로써 삶의 기본인 의식주 전반을 지원하는 단체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