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골프 거리측정기 1위 기업 브이씨(VC)가 러닝 워치를 내놓으며 세계적 브랜드 가민에 도전장을 던졌다. /브이씨

골프장에서 척척 거리를 알려주던 보이스캐디가 이제는 러너의 발걸음과 호흡을 함께한다. 국내 골프 거리측정기 1위 기업 브이씨(VC)의 김준오 대표가 러닝워치 ‘뉴런(NU:RUN) R21’을 선보이며 러닝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골프에서 부시넬과 맞섰던 언더독(강자에 맞서는 도전자)이 이번에는 가민(세계 러닝워치 시장 강자)을 겨냥했다.

㈜브이씨 김준오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2005년 무선통신용 반도체 개발·설계 전문 기업으로 출발했다. 취미 삼아 만든 ‘보이스캐디’가 대박이 나면서 디지털 스포츠 테크 회사로 변신해 세계적 강소 브랜드를 일궈냈다./브이씨

골프에서 시작된 언더독의 반란

보이스캐디의 출발은 소박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와 UCLA 박사 과정을 거쳐 무선통신 반도체를 연구하던 엔지니어였다. 그러나 취미로 만든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기반 골프 거리측정기가 뜻밖에 대히트를 치며 회사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2011년 출시된 첫 제품은 모자에 부착하는 버튼형 보이스캐디였다. “캐디에게 일일이 묻지 않고도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단순한 발상이지만, 당시 국내 골퍼들 사이에서는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출시 첫해 10만 개가 팔리며 매출 56억 원을 기록했다. 이후 시계형·레이저형·론치 모니터 등 제품군을 확장하며 보이스캐디는 국내 시장 1위에 올랐다. 글로벌 강자 부시넬과의 경쟁에서도 국내 점유율을 유지했고, 2019년에는 수출탑을 수상하며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브이씨는 2021년 매출액 537억 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단순히 골퍼들의 불편을 덜어주자는 생각이었지만, 골프장에서 실제로 써본 경험을 빠르게 제품에 반영하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이스캐디 직원 절반 이상이 연구인력이고, 상당수가 직접 골프를 즐긴다. 사용자의 눈높이에서 불편을 찾고 해결책을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 회사의 철학이다.

브이씨(VC)의 김준오 대표가 내놓은 러닝워치 ‘뉴런(NU:RUN) R21’. /브이씨

러닝 시장 공략, ‘뉴런 R21’ 전략

김 대표가 러닝 시장에 눈을 돌린 건 지난해 참가한 10㎞ 마라톤 대회였다. 직접 뛰면서 달리기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러닝은 기록과 건강, 성취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골프워치에서 다져온 GPS와 UX(사용자 경험) 기술이 러닝에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러닝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퇴근 후 러닝을 즐기는 30~40대 직장인이 늘었고, 건강에 민감한 50대 여성들도 합류했다. 세계 7대 마라톤 완주를 버킷리스트로 삼는 러너들이 많아지면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여행·관광과 결합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됐다. 국내 러닝화와 의류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러닝 전용 워치와 액세서리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뉴런 R21은 하프마라톤 21㎞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초·중급 러너를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러너들이 불편해하던 복잡한 설정과 느린 A/S(애프터서비스)를 정면으로 개선한 것이 핵심이다. 김 대표는 “러너들이 원하는 건 기록뿐 아니라 편의성”이라며 “원데이 A/S와 단순화된 UX를 통해 러너 친화적 제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제품 가격은 경쟁사 대비 절반 수준으로 책정됐다. 얇고 가벼운 디자인, 다양한 밴드 컬러는 젊은 러너를 겨냥했다. 58가지 러닝 데이터를 제공하면서도 사용자는 직관적으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브이씨는 ‘대동런지도’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전국 러너들이 즐겨 찾는 러닝 코스를 지도에 담아 공유하고, 여행과 결합한 러닝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러닝과 관광이 결합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러너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했다.

뉴런 R21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직관적이고 단순한 UX, 절반 수준의 가격, 얇고 가벼운 디자인을 꼽았다. /브이씨

김준오 대표 일문일답

― 러닝워치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작년 10㎞ 대회에 참가해 직접 뛰어보면서 달리기가 취미를 넘어 문화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술적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GPS, 센서, UX 노하우는 이미 골프워치에서 충분히 쌓았고 러닝에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 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해야 한다.“골프에서도 범용 스마트워치 앱은 전문 기기를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러닝도 전문 기기의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 뉴런 R21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인가.“러너들이 가장 불편해하던 두 가지, 복잡한 UX와 느린 A/S를 해결했습니다. ‘원데이 서비스’를 내걸었고, UX는 직관적으로 단순화했습니다. 가격은 절반 수준, 디자인은 얇고 가볍게, 밴드는 다양한 색상으로 젊은 러너를 겨냥했습니다.”

― 러닝 데이터는 얼마나 제공하나.“58가지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속도, 심박수, 케이던스, 보폭 같은 기본 정보뿐 아니라 센서 퓨전 기술을 활용해 GPS 음영 지역에서도 정확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골프에서 쌓은 기술을 러닝에 최적화했습니다.”

― 러너 커뮤니티와 연결된 서비스도 준비 중인가.“네. ‘대동런지도’라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전국 러너들이 추천하는 코스를 지도에 담고, 러닝과 여행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해외 마라톤 참가도 버킷리스트처럼 즐기도록 돕고 싶습니다.”

― 러닝워치 사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단순히 기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러너의 생애 주기를 함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록 측정에서 훈련, 대회 참가, 여행, 커뮤니티까지 연결되는 서비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 골프에서 성공한 경험이 러닝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나.“골프워치를 만들면서 사용자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러너들도 요구사항이 명확합니다. 빠른 대응, 합리적 가격, 현장감 있는 데이터 제공. 이런 점은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부분입니다.”

― 국내 시장 이후 글로벌 진출 계획은.“우선 국내에서 확실히 자리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골프에서도 국내에서 먼저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로 나갔습니다. 러닝도 같은 전략을 취할 겁니다.”

― 러닝워치 브랜드 이름을 ‘뉴런’으로 정한 이유는.“‘뉴런(Neuron)’은 신경세포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움직임과 감각을 연결하는 상징적 단어입니다. 동시에 ‘New Run(새로운 달리기)’라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러너들의 발걸음과 호흡을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습니다.”

러너와 함께 달리는 K브랜드

보이스캐디는 이미 골프에서 언더독의 반란을 완성했다. 이제 러닝에서도 같은 길을 가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다. 그는 “골프에서 시장을 뒤흔든 경험을 러닝에서도 이어가겠다”며 “대한민국 러너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