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는 지난 75년간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유지하는 핵심 축이었습니다. 세계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북한·중국·러시아가 밀착하는 시기에 우리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스테퍼니 벡(59) 캐나다 국방부 차관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캐나다가 유엔사 부사령관직(職)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불법적 침략에 맞서 연대한다는 의미”라며 이같이 말했다.

8일 서울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만난 스테퍼니 벡 캐나다 국방부 차관은 “한국 두부, 국수, 김치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국방부가 개최하는 고위급 다자 안보 회의체인 ‘2025 서울 안보 대화’ 및 유엔사 창설 75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벡 차관은 “캐나다는 언제나 충돌보다는 협력을 우선할 것이지만,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인 7월 7일 유엔사가 창설됐고 16국이 파병했다. 캐나다는 미국·영국에 이어 셋째로 많은 병력(약 2만6000명)을 보내 516명이 한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정전 이후에는 한반도 평화 유지 임무에 참여하고 있다. 벡 차관은 “유엔사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어느 정도 평화를 유지한 것은 다른 지역의 전쟁 관리에도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벡 차관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결속을 과시한 것에 대해선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북한과 중국이 돕고 있는 현 상황을 지적했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두드러질 줄은 몰랐습니다. 북한 군인이 전쟁에 투입되고, 중국도 러시아에 각종 무기 부품 등을 공급하며 전쟁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이는 단기적 위협을 넘어 장기적으로 지역 불안정을 심화하는 요인입니다. 캐나다와 한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뭉쳐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스테퍼니 벡 캐나다 국방부 차관이 8일 서울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강호 기자

캐나다는 올해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늘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 진영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 이행도 그중 하나다. 또 캐나다와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 다국적 연합 해상 훈련 ‘환태평양연합군사훈련(RIMPAC)’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국방부에 몸담고 있지만 벡 차관은 캄보디아·크로아티아 주재 대사 등을 지낸 35년 차 중견 외교관이기도 하다. 남미 가이아나에서 뉴질랜드 이민 2세로 태어나 청소년 시절 자메이카·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에 거주하다가 캐나다에 정착해 맥길대를 졸업하고 1990년 외무부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하다 보니 어떤 관계에서든 오해와 갈등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화의 채널’은 늘 열어 놓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