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일본 시가현 히코네시에 있는 사찰 소안지(宗安寺)에서 다케우치 신도 주지 스님이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한국 대원들에게 사찰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소안지는 조선통신사가 에도(도쿄)로 향하던 길목에 머물렀던 곳이다./구아모 기자

“전국시대 때 일본을 통일한 영웅으로만 생각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사에선 국토를 유린하고 민중을 학살한 침략자라는 점이 정말 낯설었습니다. 한·일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 긴키대 히가시오사카 캠퍼스에서 한·일 대학생 청년들이 만났다. 이 대학 한국어학과 재학생 야마노 나나(21)씨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한국 아이돌 그룹 ‘NCT’가 너무 좋아 한국어를 배우다가 양국 역사 서술 차이에 충격을 받아 한양대 사학과에서 한국 근현대사까지 배운 경험이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려면 서로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야마노씨를 비롯한 이 대학 한국어학과 재학생 15명은 이날 조선일보·외교부가 공동 주최한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한국 대원 16명을 만났다. ‘청년 신(新)조선통신사’는 올해로 8회째를 맞이했다. 이들은 17~19세기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8박 9일간 일본 열도를 탐방하고 지난 2일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大阪) 긴키대(近畿大) 히가시오사카 캠퍼스에서 열린 한·일 청년 교류회. 긴키대 한국어학과 재학생 15명과 조선일보·외교부가 공동 주최한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한국 대원 16명이 모여 세븐틴·트와이스·NCT·BTS 등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아이돌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고 있다./구아모 기자

통신사는 조선 시대 국왕이 일본 막부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이다. 임진왜란 직후에는 ‘탐적사(探賊使·도둑을 살핀다)’로 불렸지만, 이후 ‘통신사(通信使·뜻을 전하고 믿음으로 통한다)’로 명칭이 바뀌었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교류를 지향하는 양국의 의지가 반영된 변화였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파견된 통신사는 실제 약 200년간 양국의 평화적 공존을 이끌었다. 통신사가 머문 곳마다 일본 학자와 백성이 성리학을 배우려 모여들었고,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지난달 27일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시 시모카마가리(下蒲刈)에 있는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탐방단 학생들이 17~19세기 조선통신사의 사행 경로가 표시된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시모카마가리는 조선통신사가 에도로 향하던 길목에서 가장 성대한 접대를 받았던 곳 가운데 하나다./구아모 기자

신 조선통신사 대원들이 찾은 일본에서도 평화를 위한 역사 속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교토·히코네·시즈오카의 절 주지 스님들은 통신사가 남긴 글과 그림을 보물처럼 간직하다가 청년 대원들에게 직접 꺼내 보여줬다. 교토의 불교 사찰 지쇼인(知勝院)에 보존된 병풍에는 수행 문인들이 양국의 우호를 기원하며 지은 시문과 사군자 그림이 담겨 있었다. 고려대 대학원생 유제원(25)씨는 “책으로만 접했던 필담과 유물을 실제로 보니 벅찼다”며 “말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에 필담으로 마음을 잇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교토 지쇼인(知勝院)에서 히사야마 류쇼 주지 스님이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대학생 탐방단에게 병풍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글과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문인들은 서로 한시를 주고받으며 뜻을 나눴다. /구아모 기자

청년 통신사 대원들은 양국 역사의 비극적 현장도 찾았다. 1895년 청·일 전쟁을 끝내고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은 시모노세키조약 체결지를 찾은 뒤 임진왜란 때 희생된 조선·명나라 사람들의 귀와 코가 묻힌 교토 미미즈카(耳塚·귀무덤)도 찾았다. 히로시마에선 원폭 평화기념관을 찾아 핵 참상의 흔적을 둘러보고, 인근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며 추모도 했다.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재학생 안세민(26)씨는 “히로시마에서 만난 주민들이 세대 차이에도 따뜻하게 맞아줘 인상 깊었다”며 “앞으로 한·일 관계도 외교의 틀을 넘어 민간 차원의 친근한 교류가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청년 대원들을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9차 통신사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선비 신유한과 일본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정을 나눴듯, 오늘의 만남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오늘을 출발점으로 삼아 진정한 청년 통신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정해(23·국민대 경영학부)씨는 “탐적사로 시작해 통신사로 나아갔던 선조들처럼 불신을 넘어 이해로 향하는 여정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세이켄지(清見寺)에서 후시미 고사쿠(81) 문화해설사가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탐방단에게 사찰과 조선통신사의 인연을 설명했다. 후시미 해설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조선에 큰 피해를 끼쳤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를 극복하고 양국 간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며 “그 노력의 흔적이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구아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