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때 일본을 통일한 영웅으로만 생각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사에선 국토를 유린하고 민중을 학살한 침략자라는 점이 정말 낯설었습니다. 한·일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 긴키대 히가시오사카 캠퍼스에서 한·일 대학생 청년들이 만났다. 이 대학 한국어학과 재학생 야마노 나나(21)씨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한국 아이돌 그룹 ‘NCT’가 너무 좋아 한국어를 배우다가 양국 역사 서술 차이에 충격을 받아 한양대 사학과에서 한국 근현대사까지 배운 경험이 있다”며 “서로를 이해하려면 서로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야마노씨를 비롯한 이 대학 한국어학과 재학생 15명은 이날 조선일보·외교부가 공동 주최한 ‘청년 신(新)조선통신사’ 한국 대원 16명을 만났다. ‘청년 신(新)조선통신사’는 올해로 8회째를 맞이했다. 이들은 17~19세기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8박 9일간 일본 열도를 탐방하고 지난 2일 돌아왔다.
통신사는 조선 시대 국왕이 일본 막부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이다. 임진왜란 직후에는 ‘탐적사(探賊使·도둑을 살핀다)’로 불렸지만, 이후 ‘통신사(通信使·뜻을 전하고 믿음으로 통한다)’로 명칭이 바뀌었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교류를 지향하는 양국의 의지가 반영된 변화였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파견된 통신사는 실제 약 200년간 양국의 평화적 공존을 이끌었다. 통신사가 머문 곳마다 일본 학자와 백성이 성리학을 배우려 모여들었고,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신 조선통신사 대원들이 찾은 일본에서도 평화를 위한 역사 속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교토·히코네·시즈오카의 절 주지 스님들은 통신사가 남긴 글과 그림을 보물처럼 간직하다가 청년 대원들에게 직접 꺼내 보여줬다. 교토의 불교 사찰 지쇼인(知勝院)에 보존된 병풍에는 수행 문인들이 양국의 우호를 기원하며 지은 시문과 사군자 그림이 담겨 있었다. 고려대 대학원생 유제원(25)씨는 “책으로만 접했던 필담과 유물을 실제로 보니 벅찼다”며 “말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에 필담으로 마음을 잇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했다.
청년 통신사 대원들은 양국 역사의 비극적 현장도 찾았다. 1895년 청·일 전쟁을 끝내고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은 시모노세키조약 체결지를 찾은 뒤 임진왜란 때 희생된 조선·명나라 사람들의 귀와 코가 묻힌 교토 미미즈카(耳塚·귀무덤)도 찾았다. 히로시마에선 원폭 평화기념관을 찾아 핵 참상의 흔적을 둘러보고, 인근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며 추모도 했다.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재학생 안세민(26)씨는 “히로시마에서 만난 주민들이 세대 차이에도 따뜻하게 맞아줘 인상 깊었다”며 “앞으로 한·일 관계도 외교의 틀을 넘어 민간 차원의 친근한 교류가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청년 대원들을 인솔한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9차 통신사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선비 신유한과 일본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정을 나눴듯, 오늘의 만남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오늘을 출발점으로 삼아 진정한 청년 통신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정해(23·국민대 경영학부)씨는 “탐적사로 시작해 통신사로 나아갔던 선조들처럼 불신을 넘어 이해로 향하는 여정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