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릿쿄대가 윤동주(1917~1945) 시인 80주기를 맞아 오는 10월 윤동주 기념비를 세운다. 윤동주의 유학 시절을 소개하는 대대적인 제막 행사도 열 계획이다. 2008년부터 릿쿄대에서 재직해 온 이향진 이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윤동주 연구 활동을 하는 등 교내 윤동주 기념비 설립의 숨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에서 만난 이 교수는 “윤동주를 통해 전체주의에 희생당한 젊은이의 순수한 영혼을 본다”며 “이번에 세우는 기념비가 고통이나 갈등의 역사가 아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상징물이자 이정표였으면 한다”고 했다. 올해가 한일 수교 60주년인 점도 뜻깊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4월 일본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릿쿄대 상징인 백합 로고가 새겨진 원고지에 ‘쉽게 쓰여진 시’ 등 5편의 시를 써서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일화가 잘 알려졌다. 편지 원본은 현재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릿쿄대는 ‘쉽게 쓰여진 시’ 원고지 모양을 본뜬 금속판과 윤동주의 사진 등을 넣어 기념비를 제작해 교정에 세울 예정이다.
윤동주는 릿쿄에서 한 학기 수학한 뒤 교토 도시샤대에 편입했고, 이듬해 체포됐다. 도시샤대는 1995년 윤동주 시비를 세웠고, 올해 시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등 기념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반면 릿쿄대는 잠잠한 편이었다. 릿쿄대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2월 윤동주 추도 예배가 열리고 있지만, 창립자 외 인물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누가 계란 던지면 어떡할 거냐’ ‘창립자 동상 외엔 없지 않으냐’ 등 반대에 수년간 부닥쳤다”고 전했다.
변화를 만든 건 꾸준함이었다. 이 교수는 2016년부터 학생들과 매년 윤동주 관련 행사를 열었다. 2020년엔 ‘릿쿄 윤동주 학생 교류회’라는 학생 조직을 만들었다. 교양 수업에서도 윤동주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여론 조성에 힘썼다. 그는 “릿쿄를 다니며 윤동주에 대해 알게 된 학생이 매년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며 “윤동주는 한일 사회의 소중한 유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