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도중 미국 측 통역자로 나선 이연향(가운데) 미 국무부 국장이 통역 대상인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양국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1시간 동안 공개 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발언이 각각 영어·한국어로 순차 통역됐는데, 우리 측에서는 외교부 서기관 출신인 이 대통령의 ‘1호 통역’ 조영민 대통령실 행정관이 사실상 첫 데뷔전을 치렀다. 미 측에서는 국무부 소속 이연향 국장이 트럼프 오른편에 앉아 대통령의 말을 한국어로 통역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무부 한국어 담당 통역관으로 활동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미·북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 때마다 등장했던 익숙한 얼굴이다.

아이보리색 재킷을 입고 무테 안경을 쓴 이 국장은 이날 노트 패드에 트럼프의 발언을 적어 가며 통역을 했다. 다른 정상들과 달리 트럼프가 끊지 않고 꽤 길게 말했는데도 이를 능숙한 솜씨로 명쾌하게 한국어로 전달했다. 국무부 안에서 ‘닥터 리(Dr. Lee)’라 불리는 이 국장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의 통역을 담당하며 ‘트럼프의 입과 귀’라 불린 인물이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두루 쓰임을 받았다. 국제 회의와 각종 회담 통역을 전담하며 60여 명의 상근직, 1000명의 통·번역가를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있는 통역국 책임자를 지내기도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이 국장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영웅(unsung hero)”이라고 했다.

이 국장은 전업주부에서 세계 최고 지도자인 미 대통령의 통역 담당이 된 인생 역정으로 유명하다. 통역 실력 때문에 교포 출신이나 유학파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부친을 따라 이란에서 국제중학교를 다녔고, 연세대 성악과 재학 중 교내 영자지에서 활동한 것이 결혼 전 영어를 접한 전부다. 결혼 후에는 다국적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 유학 갈 때 따라가 미국에서 2년 살았다. 아이 둘을 키우다 33세 나이에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고, 이후 전문 통역사로 활동했다. 1996년 미국 몬트레이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바이든 정부 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22년 이 국장에 대해 “외교 통역팀의 필수 멤버로 우리는 그와 그의 팀 없이는 업무를 할 수 없다”며 “단순히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어감과 강조점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평가했다. 이 국장은 “외교 통역은 뉘앙스와 저의(底意)가 중요하다”며 “거의 가감 없이 직역에 가깝게 통역하는 것”을 비결로 꼽았다.

이 국장은 지난해 2월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주최한 회담에서 미·북 회담 통역 경험을 두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비현실’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며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차분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수십 년간의 단절이 이렇게 큰 언어적 차이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국말과 북한말의 차이가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이 국장은 김정은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현역 통역가로서 답할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는데, ‘현장에서 통역한 내용은 현장에서 잊어버리고 회담장을 나온다’는 게 그가 갖고 있는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