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남북통합문화센터. 탈북민 마순희(74)씨가 아끼는 분홍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화사한 옷과 달리 무뚝뚝한 표정에 카메라 옆에서 마씨를 지켜보던 자원봉사자 김명래(75)씨는 “남한에선 예순다섯이 넘어가면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다가 활짝 웃으면서 장수 사진을 찍는 거여, 예쁘게 웃어”라며 웃었다. 그러자 김씨의 표정이 금세 마씨에게 옮겨갔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마씨는 1998년 두만강을 건너 2003년 한국에 발을 디뎠다. 충남 아산 출신인 김씨와는 이날 처음 만났지만 비슷한 또래라는 이유로 손쉽게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인연을 닿게 한 건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마련한 탈북 어르신 장수 사진 촬영이다. 마씨를 포함해 서울 강서구·양천구 일대에서 홀로 사는 탈북 어르신 29명을 위해 생전 모습을 찍어주는 행사였다. 이 센터 자원봉사팀 소속 30여 명은 이날 어르신들의 ‘일일 짝꿍’으로 곁을 지켰다. 어르신들의 머리 손질과 화장은 탈북민 출신 미용사 양정화(37)씨가 도맡았다. 휴무를 반납하고 전북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양씨는 “남한에서 처음 배운 미용 기술로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정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에 어르신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 중 최연소인 박유경(18)양과 사진작가 박민기씨가 “환하게 웃어야 오래 산다”고 말하자 다시 웃음꽃이 폈다. 어르신들은 모두 이날 촬영을 위해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 입었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북에서 온 실버 스타’로 이름을 알린 김병수(84)씨는 무대에 오를 때만 착용한다는 무지갯빛 반짝이 넥타이를 맸다. 정영옥(80)씨는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입어보겠냐”라며 딸이 맞춰 준 한복을 가방에서 꺼내 갈아입었다.
남북통합문화센터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탈북민 어르신이 늘자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 촬영을 기획했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2021년만 해도 3명에 불과했던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 수는 작년 22명으로 늘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해 사는 기간도 길어져 65세 이상 탈북민이 전체 탈북민의 12.7%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