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국악이 유행과 멀다며 K팝이나 비보잉과 섞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외국인에겐 그 자체로 수준 높은 예술입니다. 자신감을 가졌으면 해요.”
서울대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가 말했다. 지난 2020년 서울대 국악과 최연소로 조교수가 된 안나 예이츠(36) 교수다. 예이츠 교수는 오는 28일 열리는 서울대 제79회 후기 학위 수여식을 앞두고 본지와 만나 “졸업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이츠 교수는 이번 학위 수여식에서 축사를 맡는다. 한국 대표 지성이라 불린 고(故) 이어령 선생과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등 지금까지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맡아온 쟁쟁한 명사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런던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그는 판소리와는 전혀 연이 닿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처음 판소리를 접한 것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12년 전이다. 필수 과목이었던 전통음악 수업을 듣던 중, 푯값이 싸다는 말에 우연히 간 판소리 공연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예이츠 교수는 “송순섭·이자람 명창의 ‘적벽가’를 듣고 표현력에 압도됐다”며 “한국어가 서툴러 보던 영어 자막이 의미 없을 정도로 강렬한 소리와 몸짓에 매혹됐다”고 했다. 순식간에 판소리 매력에 빠진 그는 모든 과제를 판소리 주제로 제출하기 시작했고, 전공마저 정치학에서 인류 음악학으로 바꿨다. 박사 논문마저 판소리를 주제로 썼다. 그가 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을 찾아와 인터뷰한 국악가만 60명 이상이다.
예이츠 교수는 “판소리에 담긴 인간의 희로애락이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적벽가를 예로 들며 “50대까지 자손을 얻지 못해 애달픈 아버지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남편의 이야기처럼 판소리에는 사람 사는 얘기가 물씬 담겨 있다”고 했다. 옛 조상들도 다 같은 사람이었다는 동질감은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의 현대적 가치는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최근 예이츠 교수는 ‘국악 팬덤’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국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예이츠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창극은 10분 만에 표가 매진될 정도”라며 “국악은 명창들이 팬들에게 국악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추임새는 어떻게 넣는지 가르쳐주는 등 상호 간의 소통이 강조된다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예이츠 교수는 이번 학위 수여식에서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첫걸음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호기심을 잃지 말고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자신 역시 다양한 전공으로 접한 지식과 경험이 한데 모여 지금의 자신을 이뤄냈다고 했다.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우연히 중국어를 배웠는데, 나중에 판소리에 나오는 한자어를 연구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그간 해온 노력을 토대로 남들이 상상하지 못한 길을 걸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