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야구에 ‘자율 야구’로 불리는 선진 훈련 문화를 도입하고,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광환(77) 전 감독이 2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지병인 폐섬유증 때문에 제주도에서 요양 중이던 이 전 감독은 지난달 중순 폐렴 증세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중앙고, 고려대를 졸업한 고인은 실업팀에서 선수로 뛰다가 모교인 중앙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프로 출범 후 코치를 맡다가 1989년 OB를 시작으로 LG트윈스, 한화 이글스, 우리 히어로즈 감독을 지냈다.
1980년대 말 일본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선진 야구를 접한 그는 수직적 위계 질서가 강했던 국내 프로야구에 미국식 자율 야구를 도입했다. 선발투수-중간계투-마무리로 구분되는 투수 분업화를 적용하는 등 프로야구 팀 운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LG 감독으로 ‘신바람 야구’를 이끌며 1994년 정규 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프로야구 4팀에서 감독을 맡았지만, 고인이 가장 오래 선수들을 지도한 곳은 서울대 운동장이었다. 고인은 2008년 프로 무대를 떠난 뒤 2010년부터 10년간 서울대 야구부를 지휘했다. 보수를 받지 않는 재능 기부였다. 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부상 선수가 나오면 안 된다면서 매일 연습장에 1~2시간씩 일찍 나와 그라운드에서 돌을 골라냈다고 한다. 선수들에게 야구 기술을 향상하는 것보다 협동과 희생 정신 등을 강조했고, 2019년 서울대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학장은 “고인은 야구, 스포츠를 넘어서 사람을 키우는 교육자이자 존경할 만한 참 어른이셨다”고 말했다. 1995년엔 사비로 제주에 야구 박물관도 건립했다.
고인은 폐섬유증을 앓으면서 2020년 서울대 감독직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내려가 요양 생활을 했다. 제주 생활 중에도 초등학교 교통 안전 지킴이를 하고 티볼 강습을 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꾸준히 했다. 지난 3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의 시즌 개막전에 시구를 할 때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최근 폐렴을 앓으면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됐다고 한다. 유족으로 아내 윤명자씨, 아들 이현석씨, 손주 이지윤양, 이승원군 등이 있다. 빈소는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은 4일 9시. (064)742-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