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전장(戰場)에서 나눴던 기도 덕에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나 봅니다. 전우들의 영원한 평화를 빕니다.”

6·25전쟁 참전 용사 트라훈 테세마 감매(에티오피아·왼쪽)씨가 2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국기 앞에서 경례하는 모습이다. 올해 100세인 그는 전쟁 75주년을 맞아 다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장경식 기자

25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휠체어에 탄 황토색 장교복 차림의 트라훈 테세마 감매씨가 에티오피아 전사자비 앞에 멈춰 섰다. 비석에 새겨진 6·25 전쟁 에티오피아 전사자 122명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감매씨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감매씨는 “죽기 전 꼭 한번 한국을 찾아 함께 싸웠던 전우들을 기리고 싶었다”고 했다.

감매씨는 1951년 5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100세 노병(老兵) 감매씨는 당시 26세 청년이었다. 유엔군이 서울을 빼앗겼다 다시 찾은 지 2개월째를 맞아 전쟁은 치열해졌다. 감매씨는 에티오피아 ‘캉뉴(Kagnew·초전박살) 부대' 소속으로 파병돼 강원 양구·화천·철원 등 험준한 산악 지대를 누비며 작전을 수행했다. 캉뉴 부대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의 친위 부대였다. 전투력도 황제의 근위대답게 강했다. 에티오피아군 3518명은 6·25 때 치른 253번의 전투에서 전승(全勝)했다. 그 과정에서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감매씨는 말했다. “남의 나라를 위해 싸운다고 몸을 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오늘도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싸웠고, 죽음이 두려운 적도 없었습니다.”

1952년 고국으로 돌아간 감매씨는 에티오피아 역사의 격랑에 휩쓸렸다. 감매씨는 “1960년 발생한 쿠데타에 내가 소속됐던 황제의 친위 부대가 해산됐다”고 했다. 감매씨는 군을 떠나야 했다. 이후 그는 에티오피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경비 업무를 보다가 요리를 배워 평생을 호텔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감매씨는 쿠데타로 부대가 해산되면서 군인 출신임을 당당히 드러낼 수도 없었다고 한다. 1974년 또 한 번의 쿠데타로 에티오피아 군주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군인들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가거나 처형됐고, 재산은 몰수됐다. 우방이자 동맹국인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로 연금도 받지 못한 참전 용사가 많다고 한다.

올해 100세가 된 감매씨 소원은 한국을 다시 찾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날을 떠올릴 때마다 내 젊음을 바친 한국과 전장에서 죽었던 전우들이 눈에 밟혔다”고 했다. 그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전투를 벌였던 지역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체만 한 큰 총을 들고 싸웠던 일과 죽은 전우의 시체를 내 손으로 직접 옮겼던 일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감매씨 방한은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회장 신광철)와 경북 포항 양포교회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하옥선 한국전쟁참전국기념사업회 에티오피아 지부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100세 기념 생일 잔치에서 (감매씨가)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양포교회 측과 연결했다”고 했다. 양포교회는 매년 6월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를 초대해 기념 예배를 진행한다. 지난 19일 입국한 감매씨는 포항·대구·경주 등을 여행했다.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떠나는 길,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경례하며 말했다. “허허벌판이던 한국에 이렇게 드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활기찬 분위기를 뿜어내는 걸 두 눈으로 보니 기쁩니다. 살아있는 날 동안은 늘 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세상을 떠나면 하늘에서도 한국을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