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이 열린 뉴욕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 밖. 비 오는 날이었는데도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윤주헌 특파원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입장 줄인가요?”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 앞에서 밋 존슨씨가 이렇게 물어보며 관람객 줄에 합류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쓴 관객들의 행렬이 극장에서 한 블록 건너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작사가·극작가 박천휴와 미국 작곡가 윌 애런슨이 공동 창작해 2016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한 토종 한국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는 8일 뉴욕 라디오시티뮤직홀에서 열리는 제78회 토니상에서 뮤지컬 신작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포함해 10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1100석 규모의 벨라스코 극장은 연일 매진이다. 지난달 초 토니상 후보작이 발표된 뒤에는 표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극장을 찾은 멀리사 스톤씨는 “이 뮤지컬에 대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제 보게 됐다”면서 “토니상을 받으면 사람들이 더 몰릴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고 했다.

2016년 대학로에서 초연해 한국에서는 작년까지 다섯 시즌 동안 무대에 오른 ‘어쩌면 해피엔딩’은 등장인물이 세 명뿐이다.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알맞을지언정 브로드웨이 중심에서 공연한다는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로 단출하고 소박한 규모다. 그런데도 객석은 연일 만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로봇으로 설정된 남녀 주인공 올리버(오른쪽)와 클레어가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대런 크리스와 헬렌 J 쉔이 각각 올리버와 클레어를 연기했다./NHN링크

인간을 돕다가 용도 폐기될 운명에 놓인 구닥다리 로봇 커플이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독창적인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음악이 어우러지며 관객과 평단의 찬사가 쏟아졌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이라는 설정이 인공지능이 화두인 시대상과 잘 맞는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대사는 기본적으로 영어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올리버의 집이 있는 장소로 ‘서울, 한국’이라는 자막이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나오고, 올리버가 늘 양손에 화분을 들고 다니는데 대사를 읊을 때 한국말로 ‘화분’이라고 말하는 등 작품 곳곳에서 ‘대학로 느낌’이 물씬했다. 뮤지컬 중반부를 넘어서며 주인공 두 사람은 제주도에 도착하는데, 제주도에서 유명한 반딧불이도 등장한다.

관객 연령대는 다양했다. 3층 좌석엔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온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대런 크리스가 등장했을 때는 귀청이 찢어질 듯한 환호성이 들리며 K팝 가수 콘서트장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올리버와 여자 주인공 클레어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고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올 때 관객 반응은 최고조에 달했다. 공연이 끝난 뒤 한 학생은 그 장면을 돌이키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남녀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가 춤을 추고 있다./NHN링크

한편 대런 크리스는 작품 출연 기간을 연장해 오는 8월 31일까지 올리버 역으로 무대에 선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도 해피엔딩’이라는 작품과 여기에 등장하는 로봇에 완전히 반해 열정을 갖고 뛰어들었다”면서 “지난 몇 달간의 마법 같은 시간 동안 그랬듯이 ‘제주로 갑니다!’(극 중 대사)를 매주 8번씩 계속 외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이제 관심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토니상 시상식에서 대학로산(産) 뮤지컬이 거둘 성과다. 토니상의 하이라이트인 신작 뮤지컬 작품상 부문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유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무비컬’인 ‘죽어야 사는 여자’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다만 원작이 곧 뮤지컬이라는 점 때문에 독창성 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에 높은 점수를 주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 비평가 제시 그린은 작품상 유력 수상작으로 ‘죽어야 사는 여자’를 꼽으면서도, “보통 브로드웨이와 타협하기보다는 그것을 발전시키는 공연에 표를 던진다”면서 “나라면 ‘어쩌면 해피엔딩’에 상을 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