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한국 남자 배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윤창(65) 경기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산중-인창고를 나온 장 교수는 1978년 고교 2학년 때 만 17세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혔고 이후 배구 스타로 오래 인기를 누렸다. 197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만수, 강두태, 김호철, 이인 등 선배들과 함께 한국이 4강에 진출하는 데 앞장섰다. 지금까지도 이 대회 최고 성적이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4년 LA 올림픽에선 5위에 머물렀으나 최종 전적 5승 1패로 사실상 금메달(미국·5승 1패)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냈다. 한국은 예선에서 브라질(은메달·4승 2패)을 세트 점수 3대1로 꺾었지만 미국이 브라질에 0대3으로 지는 바람에 세트 득실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하고 5~8위전으로 밀려난 바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대학(경기대)을 거쳐 1983년 실업 배구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출발해 실업 배구 리그 안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키 195㎝에 왼손 아포짓 공격수였던 그는 국내 배구 무대에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들여와 실전에서 이를 적극 활용한 첫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후위 공격(Back Attack)을 하면서 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타점 높은 공격을 자주 선보여 ‘돌고래’라는 별명도 얻었다. 1994년까지 현역으로 뛰면서 대통령배 배구대회(현 프로배구 V리그 모태)에서 팀(고려증권)을 5차례 우승으로 이끌고 두 차례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 연속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현역 은퇴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모교(경기대)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있었다.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위원도 역임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몸 관리에 신경을 썼지만 지난해 말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장민국은 LG 세이커스 소속 농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 (02)3410-3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