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조’ ‘그레이 조’ ‘마스터 조’가 온다.”
중동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80㎞ 떨어진 시리아 난민 캠프 ‘아즈락’. 시리아 전쟁으로 오갈데없는 난민 4만명이 수용돼 있는 곳이다. 지난 1일 모래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가운데 은발의 신사가 등장하자 어린이들의 함성이 귀를 때렸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와 국제스포츠단체(IF) 임원들이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뛰어왔다. 조 총재는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했다. “안녕하세요” 하며 수줍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조 총재는 이곳 난민들에게 ‘희망 천사’로 통한다. 난민촌 바깥출입은 엄두도 못 내는 곳에서, 1년 중 유일하게 ‘태권도의 날(5월 1~3일)’을 맞아 열리는 체육 대회에 참가할 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 UNHCR(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도 이날만은 난민촌 사람들에게 특별 외출을 허락한다.
이곳 난민촌은 2011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대량 유입되면서 2014년 형성됐다. WT는 2016년 이곳에 태권도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조 총재와 WT를 난민 지원으로 이끈 것은 한 장의 사진. 조 총재는 “지난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시리아 세 살배기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영국 출장 가는 동안 이 사진을 보면서 당시 수십만 시리아 난민의 고통과 나눌 방법을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WT 산하에 THF(Taekwondo Human Foundation·태권도박애재단)를 설립해 태권도를 통한 자선 사업을 시작했다. 조 총재는 “마침 유엔 세계평화의 날(9월 21일)에 맞춰 WT 시범단이 유엔 공연을 했는데, 시범단과 레바논에 파견된 평화유지군 동명부대를 화상으로 연결해 태권도 훈련 모습을 보여줬더니 반향이 컸다”고 했다.
조 총재는 “아즈락은 캠프 내 폭력, 강간 등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었다”며 “하지만 태권도를 통해 교육과 질서 유지가 유지됐고, 청소년들의 마음도 태권도를 통해 세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즈락 캠프에는 4세부터 22세까지 350명이 수련하고 있다. 태권도아카데미가 난민촌 내 교육 시설이자 아이들의 희망으로 자리 잡자 WT는 2022년부터 태권도 대회를 열었다. 여기에 더해 IOC 내 주요 종목 단체장들을 설득해 ‘호프 앤드 드림즈 스포츠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스포츠 축제로 확대했다. 올해 네 번째로 열린 대회에선 태권도를 비롯해 3x3 농구, 베이스볼5, 배드민턴, 핸드볼, 그리고 역도 시범 경기까지 총 6종목에서 대결이 펼쳐졌다.
WT는 이번 대회에 ‘아즈락캠프’와 ‘자타리캠프(시리아 난민 8만명 수용)’를 중심으로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 국제 심판 등 130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조 총재는 “난민 청소년들의 눈앞에 열린 문 하나(태권도)는 세상과 단절된 문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문”이라며 “그 문 앞에서 불안은 희망으로 변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