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건’ 회원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은 카일 스밀리(오른쪽)./후리건 홈페이지

지난달 8일(한국 시각)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 오러클 파크 325구역에 주황색 불꽃 가발을 쓴 팬 51명이 단체로 등장했다. 이들은 ‘후리건스(HOO LEE GANS)’다. 얼핏 광적인 유럽 축구 팬들을 지칭하는 ‘훌리건(Hooligans)’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실상은 자이언츠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 이정후(Jung Hoo Lee) 팬클럽이다.

후리건스 이니셜을 적은 흰색 티셔츠와 불꽃 모양 모자를 단체로 맞춰 입고 경기장에 나온다. 이 풍경이 독특해 중계 카메라가 자주 이들을 잡아서 이젠 지역 명물이 됐다.

창립자이자 팬클럽 대표를 맡고 있는 카일 스밀리(38)는 최근 이메일을 통해 “한국 팬들이 메시지로 ‘이정후를 자이언츠 선수로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감동이 밀려온다”면서 “한국 팬 응원 문화는 정말 대단하다.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비영리단체 정책 책임자로 일하면서 취미로 아마추어 야구 리그 외야수도 맡는다.

시작은 가벼운 잡담이었다. 2024년 초 자이언츠 팬들이 모여 십자말풀이를 하던 중 “이정후와 훌리건을 결합하면 후리건(Hoo Lee Gans)이 되네”라는 말을 불쑥 던졌다. 당시엔 지나가는 농담으로 치부했고 지난해엔 이정후가 시즌 초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잊혔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이정후가 활약하자 “이제 즐겁게 응원하는 일이 필요할 때”라며 행동에 나섰다. 자이언츠 구단에서 하는 커뮤니티 입장권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무료로 받은 50장을 손에 넣자 이정후 등번호 51번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51명으로 인원을 맞춘 다음, 정식으로 ‘후리건스’를 결성했다. 스밀리는 “이왕 가는 거, 뭔가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티셔츠를 맞춰 입고 불꽃 가발을 만들어 썼다”고 전했다. 응원 구호도 만들었다. “하나 둘 셋… 후! 리! 건스!” 팔을 좌우로 흔들고 하늘도 가리킨다. ‘바람의 손자’를 위한 군무(群舞)라는 설명이다. 이정후가 한국에서 뛰던 시절(키움) 응원가도 배웠고, 곧 실제 경기에서 부를 계획이다. 불꽃 가발은 자이언츠 팀 색깔(주황색)에 빠르고 역동적인 이정후 동작을 반영한 창작품이다.

51명으로 출발한 후리건스는 언론에 소개되면서 지금은 400여 명까지 늘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1500명을 돌파했다. 홈페이지(sfhooleegans.com)도 만들었다. 스밀리는 “후리건스를 비영리 멤버십 단체로 등록하는 절차도 밟고 있다. 이정후와 자이언츠, 이 도시를 함께 응원하고 연결하는 조직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구단과 손잡고 더 활동을 넓혀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스밀리는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이주민이 어우러진 도시다. 수퍼 스타 이정후든,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이정후 경기를 보다 보면 뭔가 감동이 있다. 언젠가 그와 맥주 한잔 같이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