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노원구 노원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에서 가수 김용필(왼쪽부터)씨와 시각장애인 유상숙·김상선씨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인원 기자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지난 24일 오후 3시쯤 찾은 서울 노원구 노원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지하 1층 강당에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트로트 가수 김용필이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원곡 최백호)’가 울려 퍼졌다. 시각장애인 김상선(67)씨, 유상숙(65)씨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당에 모인 약 70명의 노인 시각장애인이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열린 공연은 장애인의 날(매년 4월 20일)을 맞아 김두현 학습지원센터장이 기획했다. 그도 선천적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김 센터장은 “장애인들은 콘서트를 보려고 해도 보호자 몫까지 최소 2장의 티켓을 사야 하는 데다가 중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문화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며 “노인들에게 유명한 트로트 가수인 김용필씨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김씨 팬클럽인 ‘용feel하모니’를 통해 김씨 방문을 부탁했다. 김용필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책을 읽기 힘든 시각장애인 분들이 책 내용을 귀로 들으실 수 있게 ‘오디오북’ 녹음도 하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을 설명하는 260쪽 분량의 책을 1시간 동안 녹음했다.

이날 김씨 노래를 맨 앞줄에서 들은 권택환(73)씨는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김씨의 광팬이 됐는데, 이렇게 맨 앞에서 공연을 보고 춤을 추니 엔도르핀이 터지는 기분”이라며 “한 달 전부터 김씨가 온다는 말을 듣고 매일 밤 기다렸는데, 이렇게 찾아와 손도 잡아주고 공연도 해주니 정말 고맙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총 8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평소 콘서트장에 있는 장애인석을 보면서 한 번쯤 장애인분들만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기쁘게 즐겨주셔서 내가 오히려 힘을 얻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출신인 김씨가 TV조선 ‘미스터트롯2′ 예선에서 불렀던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그에게 ‘낭만 가객’이란 애칭을 붙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