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노블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융합 연구로 한국의 의사 과학자 양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석좌교수로 임용된 그는 24일부터 DGIST 학부 및 대학원생 교육에 나섰다./박성원 기자

성(姓)은 ‘귀족(noble)’ 뜻을 담고 있는데, 영국 런던 변두리 가난한 재단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흙수저’였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의대에 입학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와 동생 세 명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역경을 딛고 현대 생명과학의 주춧돌을 놓은 세계적 석학, 데니스 노블(Denis Noble·89)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이야기다.

노블 교수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의생명공학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돼 24일 첫 강연을 했다. 1960년 세계 최초로 심장의 움직임을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수학 모델로 구현한 ‘가상 심장(virtual heart)’을 개발한 그는 심장 질환 연구와 치료의 혁신을 이끌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1970년대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은 부유한 나라로 엄청난 현대화를 이뤄낸 한국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한국의 연구자,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의대 입학 후 임상 의사의 길을 가는 대신 의학 연구자가 된 자신의 경력으로 한국의 의사 과학자 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학기부터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DGIST 학부 및 대학원생 교육과 연구 지도에 나선다. 노블 교수는 “평생 집중한 융합 연구를 DGIST에 접목해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을 연구에 접목한 선구자로 꼽힌다. 약 70년 전 의대 재학 당시 학교에 한 대뿐이었던 컴퓨터를 생물학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대학 측에 끊임없이 사정했고, 간신히 사용을 허락받은 새벽 시간에 독학으로 이뤄낸 성과가 컴퓨터로 구현한 심장의 움직임이다. 그가 의사 과학자에 애착을 갖는 배경이다.

노블 교수는 생명체를 세포, 유전자, 환경 등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고 컴퓨터 과학과 수학 등을 접목한 ‘시스템 생물학’의 대부로 불린다. 오늘날 인공지능(AI) 기반 생명과학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는 유전자가 생명체를 사실상 조종한다고 강조하는 리처드 도킨스 박사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비판하는 대표적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생명체는 유전자만의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복잡한 상호 작용 관점에서 분석해야 온전하다는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은 통합적 연구를 강조하는 배경에 불교와의 인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자신의 시스템 생물학과 불교 사상의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불교 철학에 빠져들었다. 그가 한국의 사찰을 돌며 생명과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여정은 2021년 다큐멘터리 ‘노블이 묻다(Noble Asks)’로 제작됐다. 노블 교수는 “한국 과학계는 불교 철학의 배경에서 비롯된 통찰력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블 교수가 석좌교수를 맡은 DGIST 의생명공학전공 대학원은 올해 첫 신입생으로 의사 면허(MD) 소지자를 맞이했다. 노블 교수는 “나는 생물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이며 철학자”라며 “한국 학생들과 생명의 신비를 푸는 새로운 탐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20세기 생물학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AI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생물학이 AI와 결합해 급변하는 지금이 한국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도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니스 노블(Denis Noble)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로 생리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1960년 세계 최초로 심장의 움직임을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수학 모델로 구현한 ‘가상 심장(virtual heart)’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심장 질환 연구와 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 훈장을 받았다. 생명체를 세포, 유전자, 환경 등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고, 이를 컴퓨터 과학과 수학 등을 접목해 연구하는 ‘시스템 생물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오늘날 AI 기반 생명과학의 토대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