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미 정부의 외교 마찰을 부른 코리아게이트의 박동선(89)씨 빈소에는 20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각국 대사관은 조화를 보냈다. 조문객들은 고인을 “폭넓은 외교 인맥을 가진 ‘국제 로비스트’이면서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민간 외교관’”이라고 회고했다.
지난 19일 별세한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그가 졸업한 미국 조지타운대 한국총동문회 조기가 놓여 있었다. 일본·케냐·이집트·아랍에미리트·튀르키예·우크라이나·레바논·요르단·오만 등 한국 주재 각국 대사관에서 보낸 조화도 늘어서 있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이날 조문을 마치고 본지 기자와 만나 “고인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와 외교 경험이 많다 보니 자문한 인연이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외교 네트워크가 필요할 때마다 고인이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고인과 30년 지기라는 이심 전 대한노인회장은 “고인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던 영원한 로비스트”라고 평했다.
박씨는 1970년대 말 한미 관계를 요동치게 한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인물이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를 졸업한 뒤 워싱턴DC에 사교 모임 ‘조지타운클럽’을 만들어 미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미 정부는 당시 박씨가 한국 정부 측 로비스트로 활동했다고 봤다. 하지만 박씨는 미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한국인으로서의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친선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며 한국 정부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코리아게이트로 인해 1978년 미 의회에서 증언했고 미 당국의 기소를 면제받았다. 이후 박씨는 2006년 유엔의 대(對)이라크 석유·식량계획과 관련해 이라크로부터 25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수미 테리 사건처럼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어기고 이라크를 위해 불법 로비 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이 일로 박씨는 미 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9월 조기 석방돼 귀국했고 이후 한국에 주로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 측근은 “고인은 한국에 머물면서도 각국 대사 환영·환송 만찬을 도맡아 챙겼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