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 출신 스타들. 혼다 게이스케(왼쪽)는 스타트업 투자자로 일본 창업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고, 나카타 히데토시(가운데)는 사케 등 일본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스즈키 게이타(오른쪽)는 바이오 벤처기업 대표 직함을 달았다. /페이스북·영상미디어 임영근기자·인스타그램

국가대표로 활약을 펼친 유명 축구 선수들은 대개 지도자나 스포츠 행정가, 방송 해설가 등으로 인생 2막을 연다. 하지만 역대 월드컵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가장 많은 득점(4골)을 터뜨린 일본 축구 레전드 혼다 게이스케(38)가 가는 길은 사뭇 다르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돕는 ‘엔젤 투자자’로 변신했던 그는 이미 100여 곳의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혼다는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도 ‘데카콘’이 나와야 한다”며 “100개 기업이 소규모로 상장하는 건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 일본은 리더를 배출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강한 상태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유니콘 기업이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이른다면, 데카콘은 그 10배인 100억달러 가치의 스타트업을 뜻한다.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일본의 유니콘 기업은 7개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며, 데카콘은 없다. ‘일본은 기성 제조업은 강력하지만 혁신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자국 안팎에서 나오는 가운데, 혼다는 자신이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쌓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자국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올 초 150억엔(약 1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펀드를 조성한 그는 최근 자율 주행차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일본 유니폼을 입고 A매치(국가 대항전) 98경기 37골을 기록한 혼다는 한국 팬들에겐 ‘친한파’ 선수로 유명하다. 자국의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양국 관계는 우호적이어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자주 했다. 사실 그는 2022년 프로 생활을 마쳤지만,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적은 없다. 축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전하겠다는 자세로 호주와 아제르바이잔, 리투아니아 리그 등 변방을 돌며 공을 찼다. 현역 생활을 하면서도 2018년부터 캄보디아 대표팀 단장을 맡아 불모지에 축구의 씨앗을 뿌렸다. 그런 혼다의 도전 정신이 벤처 업계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8년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 입단하면서 박지성 이전에 아시아 축구 선수의 유럽 진출 물꼬를 본격적으로 텄던 나카타 히데토시(47)는 이제 사회 활동가로 더 유명해졌다. 선수로서 한창일 2006년 29세 나이에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면서 그라운드를 떠난 그는 그 후 2년 동안 60국 160여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2009년 설립한 것이 ‘테이크액션재단(Take Action Foundation)’. 환경과 빈곤, 교육 등 세계 다양한 문제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자는 취지로 ‘Take Action(행동을 하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엔 전통 문화를 알리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에서 도자기와 전통주로 유명한 지역을 찾아 다닌 그는 2015년부터 사케(일본 전통주)를 마케팅하는 ‘재팬 크래프트 사케 컴퍼니’ 사장을 맡았다. 이 경력을 인정받아 2020년 도쿄의 명문 릿쿄대학(立敎大學)의 경영학부 객원교수로 취임했다. 최근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소형 굴착기 조작법을 공부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2000년대에 일본 대표팀에서 28경기를 뛰었던 스즈키 게이타(43)는 ‘대변 연구가’로 변신했다. 선수 생활 동안 본인의 변 상태와 당일 몸 컨디션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느껴왔던 그는 은퇴 후 현역 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러 종목 선수들에게 용변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스즈키는 1000개가 넘는 표본을 모아 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오랜 시간 매달린 끝에 의미가 있는 경향성을 찾아냈다.

그는 현재 프로 선수와 일반인들의 건강 상태를 관리해주는 벤처기업 대표로 있다. 스즈키는 “선수 출신이 전문적인 연구를 한다고 하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정답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든 바보는 한 명쯤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