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투병하며 장기 이식만을 기다렸고 매일매일 기도했습니다.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음 문턱까지 간 후에야 가까스로 이식을 받아 수술하게 됐습니다. 자녀분의 죽음과, 그 죽음보다도 아팠을 유가족의 결단 덕분에 저는 지금의 삶을 얻어 지내고 있습니다.”
이원우(가명)씨는 작년 9월 고(故) 김건혜씨에게 장기 중 일부를 기증받아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운영하는 ‘생명 나눔 희망우체통’에 들어갔다. 생명 나눔 희망우체통은 장기 기증자 측과 수혜자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온라인 공간이다. 그는 그곳에서 김씨의 어머니 김보정(54)씨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다. 이에 이씨가 답신했다.
그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기증자에 대한 죄송함이 커 선뜻 답신을 보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용기를 내 딸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씨는 “늘 기도하던 장기 이식이 누군가에겐 작별 순간이었음 알게 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죄송했다”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녀분 생명의 일부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그는 “귀한 생명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며 “처음 우체통에 편지가 왔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너무 떨려서 바로 열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기증이 누군가에게 작별 순간이었다는 내용에 마음이 먹먹했다”고 했다.
어머니 김씨는 이 답신을 프린트해 늘 품속에 챙겨 다닌다고 한다. 김씨는 “이 편지는 우리 딸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증거”라며 “꼭 딸의 심장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김씨는 “건혜는 매해 어버이날에는 엄마·아빠 딸로 태어나서 너무 좋다고 했다”며 “부족한 것이 많은 부모였는데도 항상 차고 넘치도록 사랑받고 있다면서 감사해 줬다”고 했다.
건혜씨는 작년 9월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랑과 강원도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뇌사 판정을 받자 가족은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젊은 나이에 숨진 딸이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살아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김씨의 심장, 간과 두 신장은 그렇게 4명에게 새 생명을 줬다.
어머니가 수혜자들을 향해 편지를 쓴 건 기증 한 달 뒤다.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익명 우체통이고, 답신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도 알았지만 수혜자들을 향해 편지를 적어 보냈다. 편지에는 “딸 건혜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며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떠나는 게 우리 딸도 원하는 바였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네 수혜자 중 이원우씨가 어머니 김씨의 바람에 호응한 것이다.
생명 나눔 희망우체통은 지난 2022년 생겼다. 이 우체통이 생기기 전까지 기증자와 수혜자는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장기 매매 등 부작용을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장기 기증 유가족 사이에선 “가족의 장기를 받은 수혜자들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라도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나왔다. 결국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유가족과 수혜자가 익명 편지를 교환할 수 있는 이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