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인터뷰집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 흥민이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습니다. 누가 본다고 한들 악필인 탓에 바로 덮였을 테지만요.”

손웅정(62)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7일 열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독서노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32·토트넘)의 아버지인 손 감독은 최근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난다)를 펴냈다. 출판사 난다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손 감독의 독서노트를 보고 나눈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풀어냈다. 에세이집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 이후 3년 만이다.

손 감독은 소문난 독서광이다. TV도 잘 보지 않고 핸드폰도 전화 기능 외에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손 감독이 유일하게 즐기는 매체가 책이다. 그는 “책 한 권을 숙지하기 위해 2~3번 읽으면서 독서노트에 요점들을 기록한다”며 “악서(惡書)를 제외하고는 나를 성장시키지 않는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손 감독은 스스로 ‘국졸(국민학교 졸업)’이라고 칭한다.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나 중학생부터는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는 이어 “틀에 넣으려고 하는 학교 공부가 싫었다. 책을 통해 지식 대신 세상 사는 지혜를 길렀다”고 했다.

손 감독의 독서량은 연간 200~300권가량.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서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손 감독은 “편안하게 좋은 것 다하면서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시간만 낸다면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 둘에게는 독서를 따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손 감독은 “최고의 노후 준비는 다 큰 자식에게 잔소리를 안 하는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며 “나는 큰아들 부부 집이 어디있는지도 모른다. 다 큰 자식의 삶은 부모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잠을 자는 손흥민 머리맡에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 놓은 책을 얹어줄 때는 있었다고 한다.

지금껏 읽은 가장 재밌는 책 하나만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史記)’라고 답했다. 손 감독은 “대목 하나하나가 전부 감동”이라고 했다. 재밌었던 부분을 짚어달라는 요청을 받자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의 독서노트를 꼽고 싶다”면서 “내 독서노트도 결국 하나의 책 아니겠느냐”라면서 웃었다.

책 속 손웅정 감독은 “불편해지는 것이 곧 노력”이라고 말했다. “불편함이 계속된다는 건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습관은 처음에는 얄팍한 거미줄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강철 같은 쇠줄이 되지요.” 늘 내면을 성찰하는 구도자처럼 사는 손웅정 감독.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현재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욜로 라이프(YOLO life)’에 대해선 “소중하게 주어진 삶을, 나 편하자고 그렇게 허비하면서 사는 게…”라고 한참 말을 아끼더니 “세상에 났으면 내 가족에게라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손웅정 감독이 언론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듣는 질문이 있다. ‘손흥민은 월드클래스인가.’ 세계 최고 무대인 잉글랜드에서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이지만, 손 감독은 아들의 자만심을 두려워해 늘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날 간담회 막바지에서도 어김없이 이 이야기가 나왔다. 손 감독은 질문을 채 듣기도 전에 “월드클래스 아니라니까!”라면서 웃었다. 그는 “공만 잘 차서는 안 되고 인품도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인품이 안 된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손 감독은 “손흥민은 인품만이 아니라 공 차는 실력도 더 발전해야지”라고 다그치듯이 말했다. 말은 엄했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아빠 미소’까지는 막지 못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