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의 거물이자 대표적 친한파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전 자민당 간사장이 차기 중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85세로 사실상 정계 은퇴 선언이다. 역대 자민당 간사장 중 최고령(77세 5개월에 취임), 최장수(5년 2개월) 기록을 가진 ‘정치 귀재’ 도 작년 말부터 자민당을 강타한 정치자금 스캔들을 피해 가지 못했다.

니카이의 비서관은 3526만엔(약 3억1200만원)의 정치자금을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된 후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자 니카이는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문제가 감독 책임자인 저 자신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 불신을 초래해 국민에게 깊이 사죄한다”며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니카이 전 간사장의 공로를 고려해야 한다”며 당의 징계 유예를 시사했다.

정치자금 문제로 25일 차기 총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이 지난 2017년 6월 전남 목포 공생원을 찾아 원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공생원은 일본 출신의 윤학자 여사가 한국의 고아들을 돌봐왔던 곳이다. /연합뉴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면 톱기사로 그의 불출마 선언을 다뤘다. 그만큼 그는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해 온 거물이다. 일본 주오(中央)대 졸업 후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 와카야마현 의회 의원을 거쳐 1983년 중(衆)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3차례 연속 당선됐다. 8년 가까이 지속된 제2기 아베 신조 전 총리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020년 아베가 병으로 물러나자 당시 국민 지지가 높았던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대신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을 지지해 후임 총리로 ‘옹립’하는 데 성공, ‘킹 메이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니카이는 1990년대 말 운수(運輸) 대신을 맡으면서 한국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일본 전국여행업협회(ANTA) 회장을 겸임하던 그는 2001년 인천공항 개항으로 김포공항 국제선 운항이 중단된 후 ‘김포~하네다’ 노선 개설에 앞장섰다.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과 의기투합, 결국 김포~하네다 간 비행기가 뜨는 데 기여했다. 이 노선은 지난 20여 년간 약 3000만명을 수송하며 한일 관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니카이는 2012년 여수 엑스포의 성공에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 그는 “여수 엑스포를 계기로 진정한 우호의 시대를 열자”며 일본이 가장 먼저 여수 엑스포 참가 의사를 밝히게 했다. 엑스포 1년 전에는 일본 여행업체 대표들을 데리고 여수를 방문, 일본에 여수 엑스포 붐을 만들려고 했다. 그때 일본 일각에서 독도가 표기된 한국의 엑스포 홍보 지도를 문제 삼았다. 그러자 니카이는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호들갑 떨지 말고 이웃 나라의 축제 성공에 힘을 보태자”고 설득했다. 그는 엑스포 성공 기여 공로로 2013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지자들을 이끌고 한국을 찾아 양국 협력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2017년, 2018년에는 2년 연속으로 자신의 파벌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총 300~400명을 이끌고 방한했다.

2010년엔 자신의 지역구인 와카야마시에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일본군 장수 김충선(金忠善·일본명 사야카)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김충선의 후손 집성촌이 있는 대구시 우록동도 방문한 그는 “일본이 반성하고 속죄할 수 있고, 진정으로 양국의 신뢰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니카이는 한일 관계에 악재가 생길 때마다 막후에서 해결사로 나섰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 부품 등의 수출금지로 관계가 악화되자 “먼저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자”고 했다.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이 특사로 파견되자 “도쿄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며 오사카의 한 호텔에 중의원 3명을 데리고 나타나 6시간 동안 해결책을 모색했다. 한일 관계에 밝은 한 외교관은 “니카이 전 간사장은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사석에서도 한일 우호 관계를 강조왔다”며 “앞으로 일본의 정치인 중에서 누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