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외과학 발전의 초석을 다진 민병철(95)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귀국했다. 서울아산병원 최장수 병원장을 지내며 이 병원의 장기이식센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전신인 경성대 의대에 입학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1954년 미국 보스턴의 터프츠 대학병원 외과학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쳐 1960년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국내로 돌아온 그는 1961~1977년 서울대 의대 외과 교수로 재직했다. 세계적 간 이식 전문의인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가 고인의 제자다. 이승규 교수는 지난 2012년 한 의료 전문지에 쓴 글에서 “선생님(민병철 전 원장)에게 수련받은 수많은 전공의들은 그분을 ‘수술이 아름다운 최고의 외과 의사’로 기억한다”며 “선생님의 기초 임상 분야 강의는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어 다른 대학 의대생들이 도강하러 온 일화도 있다”고 했다. 민 전 원장은 서울대 의대 교수 재직 시절 “외과 의사는 수술도 할 줄 아는 내과 의사여야 한다”며 청진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외과 의사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고인은 대한소화기병학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 고려대 구로병원 초대 병원장 등을 거쳤다. 1990년부터는 서울아산병원 2대 병원장에 취임해 11년간 병원을 이끌었다. 1989년 이 병원 개원 때부터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선 당시 정주영(현대그룹 창업주) 아산재단 초대 이사장이 현대 측 인사들에게 “민 교수를 전폭 지원하라”고 지시하며 고인에게 병원 운영을 맡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은 서울아산병원장 재임 시절 장기 이식 분야를 키우는 데 힘썼다. 그는 “자동차 공업이 기계 공업의 꽃이라면, 장기 이식은 병원 팀워크의 꽃”이라며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의사들의 해외 연수도 적극 지원했다. 그가 뿌린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작년 12월 기준 서울아산병원은 8500건(누적) 이상의 간 이식 수술로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병원 관계자는 “서울아산병원의 장기 이식이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는 것은 고인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고인은 병원 산하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의 주춧돌도 놓았다. 그는 연구원 개원을 앞두고 모델이 될 만한 국내외 기관을 찾아다녔다. 미국 화학 기업인 듀폰의 연구소 모델에 의학 연구소 기능을 더해 지금의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을 출범시켰다.
고인은 퇴임 후에도 의료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2010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 간호·보건·행정 인재 육성을 위해 사재 20억원을 기부했다. “병원 발전을 위해선 의사뿐 아니라 의사 파트너인 간호·보건·행정 인재 육성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고인은 기부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극구 꺼렸다고 한다. 이후 아산사회복지재단이 180억원을 보태 총 200억원 규모의 ‘민병철 연수 기금’이 조성됐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 기금으로 직원 1312명이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국제 전문 자격증 등을 취득할 수 있었다.
고인은 후배 의사들과 의사 지망생들을 위해 자서전 ‘나는 대한민국 외과 의사다’(2006년 출간)를 펴내기도 했다. 자신의 성장기와 의대 입학, 의사 수련기, 서울대 의대 교수를 거쳐 서울아산병원장이 되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나는 매일 담배 한 갑을 피워가면서 회의에, 병원 경영에 온 정성을 쏟았다”고 말했다. 박건춘 전 아산의료원장은 이 책 서평에 “민 전 원장은 바쁜 중에도 수많은 의학도와 후배 의료진을 가르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후배 제자들이 이제 한국 의학계를 끌고 가는 견인차가 됐다”고 적었다.
고인은 생전에 자신이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에 돌아온 것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고 한다. 그는 의료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1995년), 대한민국기업문화상(1995년),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1999년) 등을 받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유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10일 오전 11시다. 유족으로는 아내 허영애씨와 2남 3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