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아무리 험악한 상황을 형성하더라도 한·일 청년들이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되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면 그들도 양국 청년의 우호관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본이 마주하길 꺼려하는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저희 세대부터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조금씩 양국 관계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류코쿠대 정책학부 2학년생 시모가이 아츠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의 청년재단 사무실에서 ‘한·일 청년 교류 프로그램’이라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국무조정실 소관 재단법인인 청년재단 주도로 열린 행사로 일본 류코쿠대 정책학부 2학년생 15명과 한국 청년 12명이 모여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한국 정치권 일부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반일 선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 청년들이 앞장서 모여 양국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다.
이날 행사는 청년재단에서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만 19~39세 한국 청년 51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 대한민국 청년세대 한일관계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청년재단에 따르면 응답자의 31.7%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던 반면 28.7%는 호감도가 낮은 것으로 집계돼 거의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견인한 이유로는 ‘관광·휴양 등 일본 여행에 대한 선호’(40.9%) ‘애니메이션·게임·영화 등 일본 문화에 대한 선호’(38.3%) 등이 꼽힌 반면 비호감 이유로는 ‘왜곡된 역사 인식 및 태도’가 84.1%로 압도적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기성세대에서 한일관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응답(73.2%)이 청년세대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응답(23.5%)을 압도하는 등 청년들은 세대 간 일본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으로 인식됐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 또는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한 이는 78.8%로 대다수 청년이 양국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청년재단의 발표 이후에는 류코쿠대 학생들이 조사한 양국 청년이 겪는 문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 고용 형태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설명하면서도 일본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의 취업 문제가 심각한 데 반해 한국은 지역과 직업에 따른 청년 세대 간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이후 류코쿠대 학생들은 한국의 민간에서 이뤄지는 여러 청년 지원 사업에 대해 언급한 뒤 한국 청년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정부의 정책 입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이를 토대로 양국 청년들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이어졌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박재하(26)씨는 “청년층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는 역사적 갈등이 해소됐기 때문이 아닌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양국관계가 되도록 청년층부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에 재학 중인 염정원(23)씨도 “슬램덩크를 비롯한 일본 애니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K팝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양국의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며 “이 궁금증을 시발점으로 삼아 서로 대화하다 보면 입장 차이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코쿠대의 요시오카 유우(19)씨도 “정치는 얼어붙어 있지만 양국 젊은층 사이에서는 적대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양국의 정치인 연령이 높은데 시간이 흐르면서 양국에 우호적인 정치인들로 자연스레 교체되지 않을까 싶다”고.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들은 자리에 남아 서로의 SNS(소셜미디어) 주소를 교환하는 등 친목을 적극 도모했다. 마치 정치권에서의 갈등이 있긴 하냐는 듯한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최율하(24)씨는 “일본은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도 협력을 해야 할 대상”이라며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나라인만큼 갈등의 씨앗을 화해의 씨앗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류코쿠대의 세키니시 나츠메(19)씨도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은 어딜 가나 참 친절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교류의 장들을 통해 양국관계가 더 돈독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